지난 3월 1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에 붙은 별칭이다. 이 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해 실질적인 교섭을 가능하게 하고, 노동자의 쟁의행위 등에 대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방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법 시행 약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장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과 교섭 절차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30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 사업장 456곳(민간 259곳, 공공 197곳) 중 실제 교섭에 들어간 곳은 22.4%(102곳)에 그친다. 특히 원청 교섭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기관에서도 교섭이 지연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원·하청 교섭의 길이 열리다
기존 노동조합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노사관계를 규정해 왔다. 이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가 실제로 노동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과 교섭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노동쟁의의 범위도 노동조건과 직접 관련된 사항으로 좁게 해석돼,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불법으로 판단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노란봉투법은 ▲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원청을 사용자 범위에 포함 ▲노동쟁의 범위 확대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 시행 이후 고용노동부는 3월 17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모범 사용자로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지원한다는 국정기조하에서, 관계부처와 상시적인 협업 체계를 통해 책임 있는 자세로 노동계의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여 소통·협의해 나가고 있다”라며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성실히 교섭에 임할 것이며,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이 낮더라도 노동계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공공부문 근로조건 및 처우 개선 등을 위한 실효적인 방안을 협의·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범 사용자 강조한 정부, 실상은...?
‘모범 사용자’로서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한 고용노동부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정부기관에서조차 원청교섭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노란봉투법 시행일인 지난 3월 10일, 국세청 콜센터 노동자들은 기존 하청업체와의 교섭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풀기 위해 국세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남미경 모두의콜센터지부장은 “콜센터 업무는 단순한 외주 업무가 아니라 국세청의 핵심적인 업무”라며 “실제로 예산을 편성하고 결정하는 것은 원청이기 때문에 원청과 직접 교섭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노조가 국세청에 제시한 의제는 ▲직접고용 전환 ▲감정노동자 보호 및 작업환경 개선 ▲신기술(AI) 도입에 따른 고용안정 및 노동조합 참여 보장 ▲예산 증액 및 임금구조 개선 ▲휴가제도 개선 등 5가지였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 가운데 ‘감정노동자 보호 및 작업환경 개선’ 의제에 대해서만 사용자성을 인정했을 뿐, 나머지 의제는 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판단을 보류했다.
남미경 지부장은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범위가 좁다 보니 감정노동이나 작업환경과 관련된 부분만 교섭할 수 있게 됐다”라며 “임금이나 다른 노동조건까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지는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사용자성 판단이 유보된 의제에 대해서는 노조가 다시 원청의 책임을 입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국세청이 결정권이 없다고 주장한 다른 의제에 대해 노조는 해당 사안이 실제로 원청의 결정과 관리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를 마련해 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해야 한다. 시정 여부 결정 기간은 원칙적으로 열흘이지만, 노동위원회가 10일 내 결정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한 차례만 최대 열흘까지 연장할 수 있어 실제로는 최장 20일이 걸릴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원청의 결정권을 입증할 자료를 준비하는 책임은 사실상 노조에게 있다. 결국 의제마다 판단과 입증 과정이 반복되면서, 실제 교섭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남미경 지부장은 “원청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문제인데도 이것이 원청의 책임이라는 것을 왜 노조가 입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그 과정에서 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사용자성 판단이 내려진다고 교섭이 곧바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고용노동부 산하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는 지난 4월 8일 국세청이 ‘작업환경 및 감정노동자 보호조치 개선’ 의제에서 원청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국세청이 교섭단위 분리 신청(하나의 사업장 안에 여러 노동조합이 있을 때, 이들을 하나의 교섭창구로 묶지 않고 별도로 나눠서 교섭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절차)을 하면서 관련 절차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이하 충남지노위)로 넘어갔다. 충남지노위는 지난 6월 26일 심문회의를 열고 국세청의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기각했다.
남미경 지부장은 “국세청은 처음에는 사용자성 판단이 나오면 바로 교섭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교섭단위 분리 절차를 요구하면서 교섭을 미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용자성이 인정돼도 곧바로 교섭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은 노란봉투법의 한계로 지적된다. 특히 정부기관은 예산.인력 등 핵심 권한이 기획재정부(예산)와 행정안전부(정원) 등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어, 원청 스스로 노동조건을 전부 결정할 수 없다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다.

▲ 지난 7월 7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총파업 선포 기자회견 중인 남미경 지부장.
법 시행에도 남은 과제, 실효성을 높여야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간접고용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도가 활용되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청주노동인권센터 이종은 사무국장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도 실제 교섭까지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라며 “법 시행 초기여서 현장에서 참고할 선례와 구체적인 기준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과 실제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개별 사업장에서 원청과 교섭을 하더라도 예산, 인력, 계약 등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 권한이 다른 기관이나 주체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 원청교섭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노동조건을 사업장 단위에서만 결정하는 현재의 교섭 구조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남미경 지부장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방안으로 ‘초기업교섭’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개별 원청과 따로 교섭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업종이나 산업 단위에서 공통된 노동조건의 기준을 마련하면, 사업장마다 반복되는 교섭의 부담을 줄이고 하청 노동자 간 노동조건의 격차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발주 기관이 책임 있게 나설 수 있는 상위 제도가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초기업교섭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원청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문제를 개별 사업장마다 반복하지 않고 더 넓은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 원청이 인정하는 책임 범위에 따라 노동조건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업종이나 산업 단위에서 공통 기준을 마련해 노동조건의 최소 수준을 높이는 방식이다.
또한 지방정부가 지역 단위에서 노동조건 개선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앙정부의 법 개정만으로 모든 노동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지방정부가 지역 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할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은 사무국장은 지방정부가 노동조건의 기준을 마련하고, 민간 영역도 이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지자체와 교섭해 그 기준을 정해두고, 민간에서도 그 기준을 따를 수 있도록 지방정부 차원에서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직접 교섭 당사자가 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조건을 개선한 사업장에 정책적 지원이나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은 사무국장은 공공부문이 먼저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이 노동조건 기준을 높이고 이를 계약이나 평가에 반영하면, 그 영향이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부문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부문이 법에서 요구하는 최소 수준에만 머물지 말고, 노동권 보장의 기준을 선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노란봉투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법 개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원청교섭이 작동하도록 구체적인 기준과 제도를 갖춰야 한다. 개별 원청교섭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는 초기업교섭 등 상위 교섭 구조로 보완하고, 지방정부는 지역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며, 공공부문은 모범 사용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실질적인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국세청 콜센터 사례에서 드러났듯,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해서 실제 교섭과 노동조건 개선이 곧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공공부문과 정부기관이 제도의 취지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는, 이 법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법 시행 초기인 만큼, 앞으로 원청교섭이 현장에 얼마나 정착되고 실제 노동조건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노란봉투법이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명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기관을 비롯한 공공부문부터 책임 있는 교섭의 모습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법 개정의 취지도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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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