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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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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여경
2026년 되찾은 노동절, 2026년 되찾은 노동절,
제 994 호    발행일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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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5월 1일, 달력의 숫자 ‘1’이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노동절’이라는 이름이 쓰였다. 일반적으로 근로자는 고용주 밑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으로 사용자에게 종속된 수동적인 존재로, 노동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일을 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해석된다. 1886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기가 돼 1889년 국제 노동운동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결정했다.
  우리나라도 1923년 조선 노동단체들이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1958년부터는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삼아 기념했다. 1963년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로 명칭이 바뀌고, 유급휴일 제도가 법제화됐다. 1994년 법 개정으로 날짜를 다시 5월 1일로 옮겼지만, 여전히 일부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유급휴일로 공무원 등 상당수는 쉬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명칭을 노동절로 복원하고, 올해부터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다.
 
청계광장에서 노동의 지형도를 만나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면서부터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편한 운동화에 아이 손을 잡은 부모, 카메라를 든 사람, 노란 조끼를 어깨에 걸친 사람. 이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청계광장 쪽이었다.
  오전 열 시 조금 넘어 도착한 광장에는 이미 행사가 시작돼 있었다. 전태일재단과 시민단체들이 주관한 ‘모두의 노동절 5.1㎞ 걷기 페스티벌’. 플래카드와 리플렛으로 꾸민 수 많은 부스가 청계천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주노동자 인권, 플랫폼 노동자 권리, 비정규직 안전망, 간호사 처우, 사모펀드 규제. 각 부스에는 저마다의 의제가 담겨 있었다. 이 거리를 걷는 일은 노동의 지형도를 걷는 일이었다.
  청계광장 맞은편에서는 노동단체 집회도 열리고 있었다. 확성기 소리가 행사장 쪽보다 날이 서 있었고, 구호가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노동절을 함께 즐기는 자리와 노동절의 의미를 되묻는 자리가 나란히 놓인 셈이었다.

당신의 __한 일을 던져버리세요

  아름다운재단 부스에서는 일하면서 겪은 ‘ __한 일’을 종이에 적어 구겨서 던지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억울한 일, 말 못 한 일, 위험한 일들을 써서 던져버리는 것.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피식 웃으며 금방 써 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멈추고 생각하다 다시 적는 사람도 있었다. 잠시 살펴보니 종이 한 장으로 모자라 두 장을 겹쳐 든 사람도 있었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마케팅팀 김남희 팀장은 “우리 모두 노동자잖아요.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라고 취지를 전했다.

‘근로’가 아닌 ‘노동’으로 묶이는 사람들

  이날 광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근로’와 ‘노동’의 차이였다. 고용노동부 홍보 부스에 쌓인 리플렛에는 ‘근로감독관’이 ‘노동감독관’으로 바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용노동부 정희훈 주무관은 “근로는 일반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미지지만, 노동은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입니다. 프리랜서도, 플랫폼 노동자도 포함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더 넓은 개념’ 안에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노동법>이 40년 넘게 상정해 온 노동자의 모습은 고정된 사업장에서 고정된 시간에 일하는 사람이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고 계약서 없이 일을 시작하는 수백만 명은 그 법의 바깥에 있다. 청년유니온 부스의 김다정 씨는 “작년 기준 프리랜서 노동자가 800만 명에 육박합니다. 20.30대 청년들의 첫 직장이 대부분 프리랜서 형태로 시작된다는 통계가 계속 나오고 있고요. 그런데도 프리랜서는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최저임금도, 4대 보험도, 퇴직금도 없어요. 일이 끊기면 그냥 가차 없이 끊기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사단법인 희망씨 부스에서 만난 김은선 활동가는 이 문제를 안전망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규 고용의 틀에서 벗어난 비정형 노동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니, 일을 멈추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려요.” 이어 그는 “이제야 노동자라는 자기 이름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비주체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가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주체적인 노동자로요. 하지만 법이 보호하는 노동자의 범위는 아직 그 이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부스는 다른 부스들보다 분주했다. 조은영 간호사는 서명문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하고 있었다. 대한간호협회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조 간호사는 “간호사들은 매년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그 교육이 대한간호협회에 위탁돼 있어요. 간호사 거의 전원이 협회에 소속되고 매월 급여에서 회비가 자동 차감되지만,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는 공개하지 않아요. 협회에 회비 사용 내용 공개를 세 차례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했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어요. 더욱이 회비는 내는데 협회장 선거에 투표권도 없어요. 문제는 협회에서 주관하는 보수교육 이수가 간호사 면허 유지의 조건이라 협회를 탈퇴할 수도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간호사는 “3교대를 하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기저귀를 찬 적도 있어요. 밥 먹을 시간도 당연히 없고요. 비단 간호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가 많더라고요”라며 쓴웃음을 보였다. 그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변하더라고요. 지난해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두고 변화를 위해 꿈틀대는 걸 보면서 조금은 바뀌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저도 바뀔 거예요.”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할 이름들

  이름이 적힌 안전모가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 이름도 있었고 낯선 외국 이름도 있었다. 이주노동자 노동인권사업 부스였다.
  이곳에서 만난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박순홍 사무처장은 “산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아요. ‘야’, ‘베트남’ 그렇게 불립니다.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는 건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안전모에 이름을 쓰고 그 이름으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주노동자들도 이 사회를 함께 이끌어가는 노동자로 대우받아야 해요”라며 진행 중인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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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을 하다 희생된 분들의 이름, 운명한 날짜와 나이, 사유를 적은 현수막.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서울까지

  카부기공제회 부스에는 밤새 일하고 부산에서 버스 한 대를 빌려 올라온 대리운전 기사 20명이 있었다. 부울경 대리기사들의 희망공동체인 카부기공제회의 슬로건은 ‘전태일의 풀빵 정신’이다. 추운 겨울 전태일이 날품팔이 아이들에게 풀빵을 사줬던 것처럼, 같은 처지의 노동자끼리 서로를 지킨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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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부기공제회 부스.

  카부기공제회 김철곤 회장은 대리기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설명했다. “하루 쉬면 하루 수입이 없는 게 우리 일이에요. 5년 전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플랫폼 업체와 계약하려 했지만, 의무 조항이 아니라 지키는 업체가 없어요. 수수료도 업체 마음대로, 점수 산정 기준도 업체 마음대로죠. 점수가 낮아지면 콜을 못 받고, 콜을 못 받으면 수입이 줄고, 수입이 줄면 쉴 수가 없어요. 강압적으로 일을 시키지는 않지만, 교묘하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그는 회원 500명 중 50명인 여성 대리기사 문제도 꺼냈다. “술 취한 고객이 성추행과 폭행을 해도 고용 관계가 불명확하니 신고해도 플랫폼 업체로부터 어떤 보호도 못 받아요. 우리는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 어딘가에 있어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옆에 있던 노동자 한 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20년을 일해도 퇴직금 없어

  광장 맞은편, 집회 현장에서도 노동자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코웨이 가전 방문 점검원 김경인 씨는 매년 노동절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특수고용직이다. 고객의 집을 방문해 가전제품을 점검하고 수리하지만, 위수탁 계약 구조여서 사실상 개인 사업자로 분류된다. 그는 “10년, 20년을 일해도 퇴직금이 없고, 야간이나 휴일에 일해도 추가 수당이 없어요. 최저임금법 적용도 못 받고, 4대 보험도 없어요”라며, 단 하나의 요구로 “특수고용직도 노동자임을 인정해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게 해주세요”라고 전했다.
  서비스연맹 정민정 사무처장은 홈플러스 문제를 꺼냈다. “사모펀드 투기 자본이 멀쩡한 회사를 인수해 자기 배만 불리고 빠져나가는 걸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요.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계속 사모펀드 규제법을 요구했는데 정치권은 반응이 없어요. 법과 제도를 바꾸고 현장도 바꾸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을 살리는 것이 저희의 가장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호가 울렸다. “우리는 주인이다.”

달력은 빨갛게 표시됐지만

  청계광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달력 앱을 열었다. 5월 1일. 빨간 숫자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 왔지만, 대부분 비슷한 말을 전했다.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는 것. ‘근로’가 독재 정권 시대에 굳어진 말이라면 ‘노동’은 그 시대를 밀어내고 되찾은 말이다. 이름 하나에 그만큼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대리기사도, 방문 점검원도, 프리랜서 청년도 법으로는 아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달력이 빨개진 것과 노동이 존중받는 것이 같은 말이 되려면 아직 더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지하철로 돌아오는 길에 카페 앞을 지나쳤다. 유리창 너머로 청소하는 사람이 보였다. 오늘도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 이날의 의미 안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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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절 기념 야외 조형물.
조여경 기자
yanaatyourside@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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