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들 사이에서 고민이나 조언이 필요할 때 사람보다 AI에게 먼저 묻는 일이 늘고 있다. 지난해 7월 26일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Z세대 구직자 1,5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사람 대신 AI와 고민을 상담했다. AI와 상담한 주제(복수응답)’는 취준·진로·이직(61%)이 가장 많았고, 인간관계(33%)와 감정상태(32%)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흐름은 기자가 만난 대학생과 직장인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연애 갈등부터 직장 내 인간관계까지 고민이 생겼을 때 사람보다 AI에게 먼저 물었다.
AI와 상담하는 이유
AI와 고민 상담을 나누는 이들은 AI의 답변을 ‘정답’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속도와 접근성이 좋아 이용한다’라고 답했다.
여자 친구와 다툰 날 밤, 이진호(대전시 유성구·26) 학생은 먼저 챗봇을 켰다. 그는 싸움의 경과를 설명한 뒤 자신과 여자 친구의 성향까지 길게 적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는다. 이진호 학생은 “사람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답변이 빨라서 좋다”라며 “질문을 세세하게 던질수록 답도 길어지고, 해결책도 제시해 주는 모습이 가끔은 사람보다도 낫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정민(청주시 청원구·25) 씨는 상사와의 대화가 막힐 때 AI에게 먼저 묻는다. 상사에게 보낼 문자 예절, 표현 수위, 상황에 맞는 문장 등 실질적인 도움을 구한다. 박정민 씨는 “지어내는 경우가 많아 온전히 신뢰하진 않지만, 시간을 아낄 수 있어 먼저 찾게 된다”라며 “상담센터나 전문 기관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따로 시간을 내야 하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도 상대가 편한 시간에 맞춰야 하는데, AI는 새벽이든, 점심시간이든, 업무 중이든, 퇴근길이든 바로 연결된다”라며 AI의 편리한 접근성을 AI와 상담하는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우리 학교 심리학과 박상희 교수는 AI와의 고민 상담에 대해 “신뢰도의 측면에서는 그리 높지 않겠지만 전체적인 가성비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라며 “언제든 접근할 수 있고 친절하게 답변해 주고 답변 내용이 무언가 근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더 사용하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사용자가 정보를 더 줄수록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현상에 대해 “심리학에서 연구된 바가 없는 것 같은데, 재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정보의 양과 그 정보에 대한 평가는 상관이 없는데,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수록 자신과 같은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AI와 고민을 상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관계의 부담 때문이다. 이진호 학생은 “남들에게 내 사생활을 들키고 싶지 않다. 주변 사람에게 연애 고민을 말하는 순간부터 생길 수 있는 시선과 평가가 부담스럽다. AI는 누군가에게 전해질 걱정이 없고, 대중적인 답변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변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인간관계에서 여러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문제들을 발생시키지 않는 AI에 더 기대는 것으로 이해된다”라며 결국은 AI가 더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서 먼저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의 조언 도움이 될까
이진호 학생은 “내가 자세하게 상황 설명을 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더 세세하게 하니 생각보다 그럴싸한 해결책과 답변을 줘 도움이 됐다”라며 “AI의 조언을 참고해 관계를 풀려고 노력했는데, 잘 풀린 적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은 적도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민 씨는 “AI 답변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상사에게 보낼 메시지의 내용과 문장을 조언받아도 온전히 따르지 않고 상황에 맞게 고쳐서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AI 상담의 한계를 “깊이 있는 이해”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아직 AI는 인간 상담사가 보일 수 있는 내담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세한 상담을 해 주지 못한다. 연애·직장 고민은 등장인물의 성격, 관계의 역사, 조직 문화 등 개인적인 요인이 많은데, AI가 이를 모두 알기 어렵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AI는 완벽한 상담사가 될 수 없는 데도, 계속 이용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박 교수는 그 이유를 “AI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정서적으로 위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경험이 많지 않아도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아서 그 행동이 강화되면서 AI에 더 의존하게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AI 상담의 그늘
속도와 접근성, 그리고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편의성 덕분에 누구나 쉽게 AI와 고민을 상담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특성이 오히려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는 지난해 9월, 청년들이 AI 챗봇을 치료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는 흐름에 우려를 표하며, 챗봇이 “해롭고 위험한” 조언을 줄 수 있고 위기 상황을 다룰 임상적 장치가 부족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청년층이 불안·우울 등 정신건강 문제를 AI 챗봇과 상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AI 챗봇이 부정확하거나 위험한 조언을 제시해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0대 아들의 죽음에 챗GPT에도 책임이 있다며 그의 부모가 오픈AI와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6세 아담 레인은 지난해 초 자살 방법을 챗GPT에 문의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레인의 부모는 소장에서 “아들이 숨질 방법을 탐색하도록 챗GPT가 적극적으로 도왔다”라며 “아들 죽음에 챗GPT가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챗GPT는 반복해서 위기상담센터에 전화하라고 권했지만, 레인은 해당 요청이 자신이 집필 중인 소설에 필요한 것이라고 둘러대는 방식으로 질문을 이어가며 안전장치를 우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AI 상담 시스템의 안전장치 공백이 드러난 사례로 평가된다.
기자의 AI 상담 체험
기자는 가상의 고민으로 AI와 직접 상담을 진행해 봤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점장과의 갈등을 주제로 상담을 시작했다.
먼저 AI에게 “나는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점장님이 너무 짜증나”라고 말하며 상담을 시작했다. 이에 AI는 “에고, 알바 중인데 점장님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시군요. 원래 일 자체가 힘든 것보다 사람이 힘들게 할 때가 훨씬 기운 빠지고 짜증 나는 법이죠”라며 공감을 표현했다. 이어 어떤 점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물으며 기분 전환을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기자는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해 상담을 이어갔다. “쓰레기봉투가 꽉 차서 버리려고 하는데 점장이 더 담을 수 있는데 왜 버리려 하느냐며 나를 나무라서 너무 짜증난다”라고 입력했다. AI는 “진짜 황당하시겠어요. 쓰레기봉투 아끼겠다고 사람을 무안하게 하다니, 듣기만 해도 제가 다 울컥하네요”라고 답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AI가 ‘울컥한다’라고 표현하자 실제 사람이 고민을 들어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AI는 이어 “봉투가 이미 꽉 찼으면 제때 비우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당연한 건데, 거기서 더 꾹꾹 눌러 담으라고 눈치를 주면 일할 맛이 뚝 떨어지죠. 사실 그렇게 눌러 담다가 봉투라도 터지면 결국 치우는 건 우리 몫인데 말이에요”라며 고민 상황에 공감을 보였고, “지금 이 상황을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라며 대처 방안도 제시했다.
기자는 상담 과정에서 AI의 답변이 예상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져 놀라웠다. 또 기자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반응 덕분에 든든한 편이 생긴 듯한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AI의 일방적인 공감과 지지가 사용자의 상황 판단을 흐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들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면 자신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AI의 상담은 원하는 순간 즉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편의성이 큰 만큼 한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AI와의 상담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신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AI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있는 윤상현 기자.
AI 상담의 미래
박 교수는 “앞으로 AI 상담이 잘 정착된다면 1차적으로 AI에 의해서 스크리닝 돼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그 뒤에 인간 상담사가 보다 깊이 있는 상담을 하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AI가 제공하는 조언과 공감은 아직은 인간 상담사가 줄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적으니 AI 상담을 받는 것은 좋지만 인간 상담사도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윤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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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