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발 신어요, 갔다 올게요.” 사회복지사가 입주자를 다독이며 외출을 준비하는 사이, 시설 안에서는 다른 입주자들의 돌봄 일과가 동시에 돌아간다. 장애인 거주시설 ‘충북재활원’의 사회복지사들은 산책 지원부터 병원 동행, 보호자 민원 대응, 야간 응급상황까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장애인 인권이 강조되는 지금, 그 곁을 지키는 종사자들의 노동환경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현장 안팎에서 나온다. 충북재활원 사회복지사들의 하루를 직접 따라갔다.
오전 9시, 이미 빠듯한 하루

오전 9시, 이광석 사회복지사는 이미 분주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입주자들 사이를 오가며 표정과 몸 상태를 살피고, 건조기에서 입주자들의 빨래를 꺼내 개면서도 시선은 항상 입주자들에게 고정돼 있었다. 이곳의 하루는 시작부터 빠듯하다.
“지금도 거의 최소 인원으로 근무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이광석 사회복지사의 말처럼 이곳은 통상 6명이 교대로 입주자 9~11명을 24시간 돌보고 있었는데, 최근 한 명이 퇴사하면서 이제 5명이 그 빈자리까지 나눠 맡게 됐다.
오전 일과는 직원들 간의 조율이 필수다. 누군가는 병원에 가야 하고, 누군가는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며, 누군가는 산책을 기다린다. 인력이 충분하다면 드라이브나 영화 관람 같은 개별 활동도 지원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력이 부족해지면 결국 가구 안에서 일상 돌봄에만 집중하게 된다”라고 나영수 사회복지사는 말했다. 누군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면, 안에 남은 입주자들을 돌볼 사람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회복지사 모두 이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나 사회복지사는 “처음엔 돌발행동과 저항 때문에 힘들었지만, 관계가 쌓이면 반응도 달라진다”라며 “내가 도와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입주자가 저를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기쁨을 여유 있게 느끼기엔 업무가 너무 빡빡하다.
오전 11시, 식사 지원은 돌봄의 축소판

오전 11시, 이 사회복지사는 입주자와 함께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과 생활 공간은 거리가 있는 편인데도 식판과 국그릇 등 식기류, 밥과 국, 반찬을 생활 공간까지 직접 옮겼다. 기자가 직접 들어본 식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식사가 시작되자 두 사회복지사는 더 분주해졌다.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입주자는 식사를 시작하고, 그렇지 못한 입주자에게는 직접 먹여줬다. 손에 음식물이 묻어도 개의치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 곧바로 양치 지원이 이어졌다. 두 명이 십여 명의 식사와 양치를 모두 책임지는 구조다.
사회복지사들의 점심시간도 예외가 없었다. 입주자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주변을 살피고 입주자의 행동을 확인해야 했다. 이들에게 식사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이었다.
오후에도 긴장은 계속된다
오후에도 산책 지원, 물리치료 동행이 이어졌다. 인력이 빈 날에는 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의 도움이 작은 숨통이 된다. 이날도 ‘오늘도 거의 둘이서 돌아간다’라는 말이 현장 분위기를 압축했다.
오후 3시 간식 시간도 단순한 쉼표가 아니다. 건강 상태와 식사량을 고려해야 하는 또 하나의 돌봄이다. 핫도그처럼 칼로리가 높은 간식이 나오는 날엔 저녁 식사량도 함께 조절한다.
오후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종사자들의 대답에 병원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다. 14년 차 ㄱ 사회복지사는 “예전에 비해 가장 많아진 건 의료 지원”이라고 했다. 입주자 고령화로 진료, 검사, 재활이 늘면서 의료 동행이 일상이 됐다.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시설 종사자들이 병원에서 마주치는 일도 잦다. 현장에서 “의료 지원 전담팀이 필요하다”라는 요구가 반복되는 이유다.
병원 동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CT나 MRI 촬영 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입주자를 직접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ㄱ 사회복지사는 “CT 촬영 때 병원 관계자가 저보고 잡고 있으라고 해서 결국 혼자 잡고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치과는 더 힘들다. “일반 치과에 가면 저희가 다 잡고 있어야 해요. 20~30분씩 잡고 있으면 너무 힘들죠.” 사회복지사의 몸이 제도의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밤은 낮보다 무겁다

▲ 이곳의 잠금 장치는 반대로 달려 있다.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야간 근무는 낮과는 다른 무게를 가진다. 낮에는 최소 2명이 함께 근무하지만, 밤에는 근무자 1명이 입주자 전체를 감당한다. ㄱ 사회복지사는 “안 좋은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라며 “한 분이 다쳐서 피가 나고, 다른 분은 흥분하고, 또 다른 쪽에선 배변 실수가 겹치면 처음엔 멘붕이 온다”라고 말했다. 순간적 판단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이 야간 근무자를 짓누른다.
교대근무는 일상의 리듬 자체를 흔든다. 공휴일과 명절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일해야 한다. ㄱ 사회복지사는 “젊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요즘은 퇴근하자마자 한두 시간은 꼭 자야 몸이 버틴다”라며 “딸아이가 어렸을 때 왜 아빠는 다른 아빠들 쉴 때 일하냐고 물은 적 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교대근무의 피로는 가정 안까지 스며든다.
퇴근 후에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ㄱ 사회복지사는 “밤 근무 마치고 자야 하는데, 전화가 온다. 업무 카톡은 자다가도 확인하고, 나랑 상관없는 내용이면 다시 자는 상황”이라며 “혹시 사고 난 거 아닌가 싶어서 전화를 안 받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현장은 그대로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은 꾸준히 개정되고 있다. 2024년에는 권익지원센터 설치.운영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처우개선위원회는 2025년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전년 대비 3.0% 인상하기로 의결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은 강제 규정이 아닌 권고 기준이다. 물가 상승과 업무량 증가, 감정노동 심화를 고려하면 개선 폭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뷰에 응한 사회복지사 3명은 모두 “현장에서 바로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라고 했다. 나 사회복지사는 “아직까지 와닿는 뾰족한 대안이 생긴 건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도, 시설 구조상 실제 대응은 한 쪽을 다른 가구로 옮기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가장 반복된 말은 “정신적으로 더 힘들다”는 것이었다.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접근성이 낮다. 충북재활원 요셉의집 이재희 사무국장은 “상담을 받으려면 혼자는 안 되고 몇몇을 모아 상담 기관을 방문해야 하는데, 근무 여건상 따로 시간을 낼 수가 없다. 본 기관에서 출장 형식으로 상담 기관에 보내주기도 하지만 실질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나 사회복지사는 “상담 지원보다 차라리 며칠 길게 쉴 수 있는 휴가를 주면 좋겠다”라고 했지만, 대체인력 부족과 예산 문제 앞에서 그 바람은 쉽게 실현되지 못한다. 열악한 처우는 인력 이탈로 이어지고, 이탈은 다시 남은 종사자의 과중한 부담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새로 들어온 종사자가 며칠이나 몇 주 만에 그만두는 일도 드물지 않다.
현장이 버티지 못하면 돌봄도 지속될 수 없다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현진 교수는 “열악한 근무환경은 숙련 인력의 장기근속을 어렵게 해 돌봄 서비스의 질 저하로, 나아가 거주 장애인의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안전 확보를 이유로 통제 중심의 돌봄이 강화되고, 그 과정에서 거주인의 자율성이 훼손돼 장애인 권익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라는 우려를 제기하며 농촌 지역일수록 인력 수급이 더 어렵다는 점도 현실로 언급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처우 개선은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과 근로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구조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동시에 처우가 나아지는 만큼 사회복지사 스스로 전문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충북재활원의 사회복지사들은 오늘도 식사와 위생 지원, 산책, 병원 동행, 야간 응급상황을 쉼 없이 감당하고 있다. 더 나은 장애인 돌봄은 종사자 개인의 헌신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충분한 인력과 실질적인 제도 지원, 회복할 수 있는 노동조건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입주자의 삶을 지탱하는 손이 지쳐 무너지지 않도록, 돌봄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현실을 제도 안에서 제대로 돌봐야 할 때다.
윤상현 기자
sanm9427@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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