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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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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건
부당해고 판정에도 움직이지 않는 KBS
제 990 호    발행일 : 2025.11.03 
  “일상이 무너졌어요.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없게 됐고, 당장 생계가 걱정됐죠.”
  지난해 11월 말, KBS 청주총국(이하 KBS)은 2011년에 입사해 단절 없이 13년 6개월간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해온 프리랜서 ㄱ 작가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방송 프로그램이 폐지됐다는 이유였다. ㄱ 작가는 당시 순간을 당황스러움으로 회상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통보를 받고 이후 바로 대응이 어려웠어요. 알겠다는 대답 외에 아무 말도 못 했던 거 같아요. 생각을 정리한 뒤에야 총국장이나 라디오 편성국장처럼 책임질 권한이 있는 분을 만나 입장을 전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할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KBS는 ㄱ 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며 부당해고가 아닌 용역계약 해지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ㄱ 작가는 형식만 프리랜서였을 뿐, 사실상 상품권 내역 작성, 통제구역 출입자 기록 관리 등 상급자의 지휘.감독 하에 일하는 노동자로서 근무했다며 충북지방노동위원회(이하 충북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이에 올해 2월 10일, 충북지노위는 “KBS의 해고는 부당해고”며 “KBS는 ㄱ 작가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정상 근무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KBS는 명령에 불복하며 재심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 역시 초심인 부당해고 판정을 유지한다고 판결을 내렸으며 다시금 복직 명령을 내렸다. 두 번의 판정이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했고 동시에 복직을 촉구한 상황. 하지만 KBS는 지난 6월 20일, 원직 복직하라는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서 1,462만 5,000원의 이행강제금을 물었고 중노위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2차 불복 의사와 함께 지난 8월 4일, ㄱ 작가에 대한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초심, 재심에 이은 노동자 피 말리기 소송전을 맞이하며 지난 9월 25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이하 본부)와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충북민언련)은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해고 문제 해결과 방송 비정규직 고용실태 변화를 위해 ‘KBS 특별근로감독 청원서’를 청주고용노동지청에 제출했다.
  이번 달로 어느덧 ㄱ 작가가 부당해고 된 지 1년이 됐다. 아직 방송국 내 프리랜서 부당해고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자 피 말리기 행정소송만이 이어지고 있다. 수신료로 충당되는 막대한 소송비와 이행강제금 속에서, 공영방송의 책무와 수신료의 가치를 지킨다는 KBS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KBS 계속되는 판결 불복, ㄱ 작가 “복직 명령 이행하라”

  지난 9월 24일부터 매주 수요일, KBS 정문에서는 ㄱ 작가를 비롯해 본부, 운동본부, 충북민언련이 주최하는 ‘부당해고 방송작가 원직 복직촉구 수요 출근 피켓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KBS 앞에서 ‘방송작가도 노동자다’라는 제목으로 원직 복직촉구 결의대회가 열리며 KBS의 판결 불복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ㄱ 작가는 결의대회 연단에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기를 냈습니다. 지금 침묵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저와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될 거라는 생각에 입을 열게 됐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냈다. 그는 “방송 현장 곳곳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헌신에 비해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습니다. 일할 때는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권리를 주장할 때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하며, 방송국의 위선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이어 ㄱ 작가는 “무엇보다 방송국은 사회의 공정함과 정의를 말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 아닙니까?”라며 공영방송의 책무를 강조했고, 나아가 “정부 관계 부처분들,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프리랜서라는 계약으로 위장된 실질적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또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파악해 주십시오. 그리고 실질적인 대책과 제도를 마련해 주십시오”라고 촉구하며, 단순한 복직 명령 이행을 넘어 방송계 노동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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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수요일 KBS 청주총국 앞에서 피켓팅 시위를 진행하는 ㄱ 작가.

복직 명령에도 ‘작가’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중노위가 ㄱ 작가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는 여전히 복직하지 못한 상태다. 설령 복직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가 이전처럼 작가로서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2022년 KBS 전주총국에서 7년간 일하다 부당해고 당한 방송작가가 노동자로 인정됐고, 이후 복직이 이뤄졌으나, 다신 작가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례가 있다. 노무법인 돌꽃의 대표 김유경 공인노무사는 “(KBS 전주총국과 판결이 이뤄질 당시) KBS 사측이 했던 얘기가 있다. 작가가 설령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를 정규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직종으로 배치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결국 작가에게 행정직으로의 복직을 압박했고, 현재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KBS 수신료 징수 업무’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노무사는 이러한 행태가 ㄱ 작가에게도 반복될 수 있음을 우려하며, KBS가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끌며 작가의 권리를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ㄱ 작가는 “방송계가 워낙 좁다 보니 ‘소송 작가’라는 낙인이 따라붙었다”라며 “복직이 최우선이지만, 그 이후에도 부당대우와 차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투쟁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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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의대회에서 KBS의 부당해고를 규탄하는 김유경 공인노무사.

방송계의 구조적 비정규직화를 없애려면

  충북 지역 시민단체들은 이번 ㄱ 작가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부당해고 문제가 아니라, 한국 방송계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한 ‘구조적 비정규직화’의 단면으로 보고 있다.
  왜 방송국은 비정규직화를 구조화하고 있는 것인가?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선지현 공동대표는 “이 문제의 뿌리는 IMF 이후의 구조적 변화에 있다”라고 말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비정규직 제도는 기업에게 인건비를 줄이는 효율적 수단으로 인식됐다. 그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조차 비정규직으로 돌리면 책임은 덜고 비용은 절감할 수 있다”라며 “방송 업계는 그 구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업종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방송국의 비정규직화는 단순한 인력 운용 전략이 아니라, ‘열정 페이’라는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 선지현 공동대표는 “작가나 아나운서 같은 직종은 창조적인 노동,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많은 청년이 꿈을 안고 뛰어든다”라며 “방송국은 그 ‘꿈’을 이용해 부당한 처우와 저임금을 정당화해 왔다. 결국 이 구조는 ‘열정’을 자본의 비용 절감 수단으로 만든 셈이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방송산업 비정규직 활용 실태조사 2021>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3사의 시사교양국.보도국 내 프리랜서는 1,125명으로 정규직 1,078명보다 많았다. 이에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이수희 대표는 “PD, 작가, 아나운서 등 방송직의 경우 비정규직 중 프리랜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방송작가는 97.4%, 아나운서는 92.9%, PD는 85.7% 수준이며, 지역 방송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법적으로 근로자성을 명확히 인정하고, 이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과거 진행한 KBS 비정규직 전수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프리랜서로 분류된 이들 중 상당수가 사실상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였다”라며 “특히 방송작가들이 이러한 구조의 중심에 놓여 있었음에도, 회사 측은 현실을 은폐하거나 개선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프리랜서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이 법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2021년 MBC <뉴스투데이> 작가들이 최초로 노동자로 인정받았고, 2022년에는 KBS 전주총국에서 7년간 일한 방송작가가 노동자로 인정됐지만, 사용자들은 여전히 프리랜서라는 형식을 유지한 채 상시.지속 업무 종사자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부당해고를 넘어,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하고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노동계는 방송 현장의 고질적인 불안정 고용 구조를 해소하고, 방송 노동자들이 법적.사회적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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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3일 결의대회에서 KBS에 원직 복직을 촉구하는 ㄱ 작가와 충북의 시민단체.

  KBS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에도 복직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노동위원회 결정에 법적 강제력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33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노동위원회의 복직 명령 등 구제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행강제금은 매년 2회 범위 내에서 반복 부과할 수 있지만, 부과 기간은 최대 2년으로 제한된다.
  다만 이행강제금은 행정상 제재에 그치기 때문에, 기업은 벌금을 내고 버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부 방송사는 수천만 원의 제재금보다 ‘복직 지연으로 얻는 시간’이 더 이익이라는 현실적인 계산을 한다. 또한, 사용자가 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하면,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복직 명령의 효력이 멈춰 구제 절차가 수년간 지연되는 구조적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등불이며, 홀로 걷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프리랜서 노동자 문제 앞에서만큼은 그 빛이 닿지 못하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에 이제는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한 때다.

김동건 기자
dongard@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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