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의 날’이 정부 차원에서 선포된 지 22년, 충청북도 도내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됐다. 바로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만들자는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충북본부가 출범한 것이다. 그들은 왜 명칭을 바꾸고자 하는 것일까? 이동권 이슈가 타올랐던 2022년 이후 우리 주변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은 어떻게 진행 중일까? 장애인의 날을 바꾸고자 하는 이유와 2년간 충북의 장애인 이동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평등한 하루하루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지혜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매년 4월 20일쯤이 되면 지자체를 비롯한 다양한 장애인 관련기관은 ‘장애인의 날’ 행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들은 장애인을 한자리에 모아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이나 경품을 주며 ‘장애인의 날’을 기념한다. 장애인들도 이날을 ‘선물 받으러 가는 날’, ‘잔치하는 날’ 정도로 생각하며 행사장을 찾는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날은 모두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버텨온 것을 기념하고 있다. 1886년 5월 미국에서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를 유혈 탄압한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노동자의 날’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장애인의 날은 1981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지정한 ‘재활의 날’을 UN의 지침에 따라 전두환 정권이 ‘심신장애자의 날’로 지정하며 시작됐다. 당시 장애인의 날 행사는 정치인들이 참석해 화려한 공연이 이어지고, 장애를 ‘극복’한 영웅 이야기를 시상식과 함께 널리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에서는 이를 두고 “인간승리와 감동의 드라마로 장애인의 삶을 미화하고, 현실의 차별 구조를 은폐하고 권력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기만적인 행태가 이어진다”라고 평했는데, 사실 지금의 장애인의 날 행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권익옹호 활동가이자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충북장차연) 사무국장인 김지혜 활동가는 “비장애인들의 날이 따로 있지 않듯이 ‘장애인의 날’이라고 장애인이 선물을 받거나 잔치에 참석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 ‘장애인의 날’은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졌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날이다. 그래서 충북장차연은 4월 20일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매년 돌아오는 4월 20일이 철폐돼 장애인에게도 그저 보통의 하루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충북의 장애인 이동권 실태, 2년간의 변화
<충북대신문>은 지난 2022년 3월 7일자 제963호 “충북 장애인 이동권, 그 실태를 짚어보다” 기사를 통해 당시 충북의 장애인 이동권 실태를 점검했다. 그로부터 2년이 넘게 흘렀지만, 충북의 장애인 이동권은 변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더딘 발전을 하고 있었다.
가장 시급한 개선 사항은 특별교통수단 증차 문제로, 지난해 11월 충북장차연은 ▲해피콜 운행 확대 ▲1대당 운전원 증원 ▲야간 운행 확대 ▲모든 특별교통수단의 광역 이동 허용을 요구했지만, 아직도 만족할 만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2년 12월 충북도는 ‘특별교통수단 광역 이동지원 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하며 다른 시.도처럼 앱을 통한 ‘해피콜’ 예약이 가능하게 ‘충북광역교통약자’ 앱을 개발했지만, 약 10분 안에 배차가 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예약이 취소되는 데다 상담원과의 연결도 원활하지 않다. 야간 운행 확대도 24시간 운행하는 곳은 청주와 옥천 뿐이고, ‘해피콜’ 특장차인 승합차를 약 10대 증차했으나 여전히 법정 의무대수인 206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반택시 영업을 하다가 교통약자의 이용신청이 있을 때 비 휠체어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는 바우처 택시의 수는 2년간 50대로 동결됐으며, 임차 택시는 4대가 줄어든 14대로 확인됐다. 여기에 해피콜 특장차를 운전할 기사도 부족해 전국적으로 차량이 있어도 운행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과 함께 대표적인 이동권 증진 방안으로 꼽히는 저상버스 확대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2년 충북도는 전국에서 가장 저상버스 도입률이 낮은 지자체였는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023년 기준 충북 11개 시.군 평균 저상버스 도입률은 16.2%로 2019년 발표한 도내 저상버스 도입률 24.2%보다 낮아졌는데, 대.폐차 후 새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이는 전국 평균 도입률인 32.8%의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도입된 저상버스도 자동 리프트 시설은 고장이 잦고, 운전기사가 수동으로 리프트를 조작해야 할 때는 조작법 교육이 되지 않아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원활한 이용이 어렵다.

▲ 지난해 11월 이동권대책을 요구한 충북장차연의 모습.
한편, 충북도는 이번 6월부터 11개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특별교통수단 업무를 ‘충청북도 광역이동지원센터’로 통합 운영한다. 충북도 관계자는 “시범운영 기간 제기된 민원의 대부분은 시.군별로 적용해 오던 특별교통수단 운영 기준이 달라 발생한 불편 사항으로 이른 시일 내 상이한 운영 기준을 통일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10월 충북도는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 계획을 수립하고 올해부터 관련 정책을 강화해 2026년까지 저상버스 도입률을 47.9%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시군마다 시내버스의 3분의 1 이상을 저상버스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2026년 충북 인구추계 164만 2,500명 중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는 53만 3,132명(32.5%)으로 전망된다.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지혜 사무국장 인터뷰

Q. 지난 3월 충북장차연에서 ‘탈시설장애인당 충북도당’을 출범하며 기자회견을 하셨습니다. 이름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탈시설장애인당을 실제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이 출범하게 된 이유와 포부를 설명해 주세요.
탈시설장애인당은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례적으로 창당된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가짜정당’이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정식 정당은 아니지만 장애인의 권리 의제를 사회에 공식적으로 제시한 하나의 움직임이었고, 2024년 총선을 준비하며 전국적으로 당원을 모집하고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장애인 권리 의제가 지속적으로 외면당하고 혐오가 조장되는 이 사회에 정책요구를 하기 위한 정당입니다.
Q. 그렇다면 선거철마다 난립하는 생소한 정당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탈시설장애인당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나, 가지고 있는 특별한 계획이 있을까요?
탈시설장애인당은 정치활동이 두드러지는 선거기간에만 활동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당 활동(정당한 권리정책요구)을 하며 지역사회에 의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 탈시설장애인당의 역할이자 계획입니다.
Q. 당연히 모든 활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게 어렵다 보니 때로는 무력감도 느끼실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 새로운 길을 탐색하며 꾸준히 활동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공동체 혹은 개인 차원에서 답변해 주세요.
이 질문은 개인 차원에서 답변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비장애인이고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 운동에 대해 많은 불편을 호소했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러던 중에 장애인의 이동권이 단순히 그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를 넘어 삶 자체임을 알게 됐어요. 장애인권리투쟁은 ‘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권리 투쟁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요구입니다. 삶을 살고자 하는 장애인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이루고 싶은 의지가 제가 이 활동을 하는 원동력입니다.
Q. 지난 4월 충북장차연에서는 도내 국회의원 후보 21명에게 장애인 정책 질의를 했는데, 답변을 준 후보는 4명에 불과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충북 정치권의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사례인데, 충북에서 특히나 주목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권리나 정책적으로 취약한 면은 무엇일까요?
충북은 장애인 이동권뿐만 아니라 장애인 권리정책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보이는 지자체입니다. 이것은 충북도가 장애인 권리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등 모든 권리가 타 시도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충북도의 관심과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김지혜 사무국장은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장애인 권리투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라며 “장애인이 행복한 세상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고 전했다. 장애인도 국민으로서 마땅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 이동권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게 하는 기본권이며, 장애인에겐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비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은 장애인의 불편함에 견주면 하찮은 정도다. 그들의 외침은 불편함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장애인의 시혜적인 시선으로 맞이해 온 ‘장애인의 날’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도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며 기사를 마친다.
고지민 기자
ziminimin@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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