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을 질 무렵, 불이 켜지는 교실
평일 오후 6시,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시간이자, ‘늘푸른교실’의 수업 시작 30분 전이다. 오늘도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한 최지수 교장은 굳게 닫힌 늘푸른교실의 문을 열고 교실에 불을 밝혔다. 이후, 각종 업무를 처리하고 프린트물을 인쇄하는 사이, 엘리베이터에서 삼삼오오 학생들이 등교하는 인기척이 들려온다.
“할머니, 오늘 모자 예쁜 거 쓰고 오셨네요?” 따뜻한 인사가 교실을 채운다. 답례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들, 그리고 악수하며 서로에게 전하는 온기. 나이를 초월해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늦은 도전을 시작한 이들과 그 도전을 돕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함께하는 곳, 늘푸른교실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된다.
늘푸른교실은 네 개의 개성 있는 반으로 구성돼 있다. 한글을 함께 배우는 ‘풀잎반’, 영어 실력을 키우는 ‘샘물반’, 중등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꽃들반’, 그리고 고등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다솜반’이다. 기자는 그중 꽃들반의 한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수업 중인 풀잎반의 모습.
꽃들반 장순애 학생 이야기
“제가 이런 걸 안 해봐서 못하겠는데”
기자는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꽃들반에서 가장 열정적인 학생을 만났다. 쑥스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학생의 모습을 보니 등교 시간만 다를 뿐, 교복만 입지 않았을 뿐,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인터뷰를 부끄러워했지만, 중등 검정고시 준비라는 멋진 도전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진심이 통해서인지, 장순애 학생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Q. 학생분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상당구 영운동에 사는 장순애라고 합니다. 나이는 74세이고 작년 7월부터 꽃들반에서 중학교 공부를 하고 있어요.
Q. 74세요? 너무 젊어 보이세요. 그럼 늘푸른교실로 등교하시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젊을 때는 남편이랑 장사도 하고 같이 배달도 하면서 서비스업에서 일했어요. 그렇게 일하다가 우리 아들, 딸들 대학도 보내고 나중엔 손주들을 키워주다가 어느덧 손주들까지 대학교, 고등학교를 보냈죠. 그렇게 다 학교로 보낸 다음 집이 한산해지니까 지루했고,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공부하는 걸 좋아했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한 지 60년 만에, 더 배우고 싶어서 늘푸른교실로 등교하게 됐어요.
Q. 중등 검정고시를 공부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단순히 배우고 싶어서 등교했는데 선생님들을 통해서 검정고시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래서 배워보니 검정고시 준비도 너무 재미있고 자격증도 준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 보였어요.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65세 이후에 시니어 일자리에 지원할 수 있어요. 그 일을 지원할 때 이력서에 검정고시 합격 사실을 적을 수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중졸’이란 단어를 쓸 수 있으니까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어요.
Q. 검정고시가 4월 5일이라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무엇인가요?
지금 엄청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영어가 특히 어렵더라고요. 영어는 눈치껏 해야 할 거 같아요.(웃음) 다른 과목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단 말이에요. 영어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 영어 말고 다른 걸 더 많이 맞히려고 노력하려고요. 그리고 외우는 게 어려운 거 같아요. 매일 등교하지만, 과목 당 배우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배웠던 걸 잊어버리니까 집에서 계속 책을 들여다보게 되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안 되겠어요?
Q. 가장 자랑할 만한 본인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나는 장점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나쁜 것만 있는 거 같아요. 그래도 늘푸른교실은 한 번도 안 빠지고 계속 등교한 점, 그런 꾸준함은 자랑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Q. 이렇게 꾸준하게 공부하시는 모습을 가족들도 알고 계시나요?
그럼요! 응원해주고 있어요. 손자 손녀들이 필요한 거 사주고 시험 준비한다니까 사과 선물도 보내줬어요. 특히 손녀딸이 시험에 필요한 책도 사줘서 정말 고맙죠. 손녀랑 같이 공부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무엇보다 제가 공부한다는 걸 자기 일처럼 좋아하더라고요.
Q. 공부하실 때 가장 신기했던 것, 처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과학 공부할 때가 가장 신기했어요. 사람의 신체 피부든, 눈이든, 뭐든지 하나하나 소중하고 필요하지 않은 게 없더라고요. 사람이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과학 공부하면서 더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사회 시간에 배운 기후랑 위도, 경도라는 가상의 선이 있다는 걸 배우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덕분에 집에서 뉴스를 보면 귀에 들어오는 게 생겼어요.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요.
Q.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하지 않나요? 옛날에는 일만 하느라 공부를 못해서 항상 배움이 한이었죠. 지금은 뭐든 할 수 있잖아요. 공부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일단 해 보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안 하면 나중에 큰 후회로 다가올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고 우선 해 보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 마지막 질문이에요. 학생으로서 앞으로 다짐, 공부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인지 알려주세요.
저는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대학교 공부까지 하는 게 목표예요. 물론 엄청 힘들 것 같은데, 이런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까지도 제 다짐이에요. 처음 늘푸른교실에 왔을 때도 ‘좀 힘든데 괜히 왔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한번 빼먹지 않고 등교하니까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도 일단 해 보고, 배우면서 즐거운 하루하루 보내고 싶어요.

▲ 최지수 교장(왼쪽)과 장순애 학생(오른쪽).
최지수 교장선생님의 이야기, 봄소풍도 갈 예정이에요.
늘푸른교실 학생들의 도전을 뒷받침해 주고 활기 넘치는 배움의 장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학생보다도 앳된 교장선생님이 있다. 그는 실제로도 앳된 21살의 대학생이다. 그는 어쩌다 늘푸른교실의 운영에 뛰어든 것인지, 야간학교 운영에서 가장 주의하는 점은 무엇인지, 향후 행사 계획은 무엇인지 최지수 교장선생님께 물어봤다.
Q.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늘푸른교실 교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지수입니다. 서원대학교 생물교육과 2학년 재학 중이고 나이는 21살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외할아버지랑 같이 지냈는데 그 덕에 자연스럽게 노인 교육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래서 대학에 붙었을 때부터 봉사할 수 있는 야간학교를 찾아봤고, 늘푸른교실이 유일하게 대학생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곳이어서 과감히 지원했습니다. 일반 교사로 8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지금은 직접 좋은 방향으로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교장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8개월의 교사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가 생각나네요. 제가 처음으로 맡았던 학생에게 원소주기율표를 가르쳤을 때였어요. 아무래도 낯선 원소 이름들을 외워야 하니까 많이 어려워하셨죠. 그런데 그 학생분께서 매일 운영 시간보다 일찍 교실에 나오셔서 혼자 주기율표를 외우고 계셨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 들었어요. 정말 큰 감동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두 번째로 수업 중에 강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 있었어요. 우리는 당연히 강보다 바다가 훨씬 넓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 학생분은 가까이서 접하는 강이 당연히 바다보다 더 넓은 줄 아셨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동기에 이뤄지는 교육뿐만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늦게나마 받는 교육도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Q.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다루는 중.고등학교 교재는 성인 학습자용으로 나온 게 많지 않아요. 글씨 크기가 작아서 어르신들이 보시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복합기를 이용해서 B4 용지로 자료를 크게 만들어 수업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이해하시는 속도가 달라, 같은 내용을 몇 번씩 반복해서 수업하는게 정말 중요해요.
Q. 앞으로의 학교 운영 계획과 진행 예정인 행사가 있나요?
검정고시 이후 4월 말에 늘푸른교실의 소풍이 예정돼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전에 학교를 다니며 응당 누리셔야 했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저희가 제공해 드리려고요. 충북 내에서 갈 곳을 정할 계획이고, 한국사 관련 직종인 교감 선생님의 역사 수업도 병행하며 알찬 현장체험학습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더불어 ‘생활 문예 활동’을 기획하고 있어요. 젊은 분들은 새로운 ATM기가 생겨도 적응이 쉽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어려워하시거든요. 젊은 사람들이 누리는 편한 일상을 어르신들도 누릴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까지 저희의 의무라고 생각해, 생활 문예 활동으로 ATM기, 키오스크 작동 방법을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늦게 시작한 배움일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 포기를 뒤로한 채 책상 앞에 앉은 늘푸른교실의 학생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완연한 봄이 찾아온 4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순간은 없지 않을까?
김동건 기자
dongard@chungbuk.ac.kr








김동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