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센 비가 내린 후에 고개를 들어 살피지 않는다면 찬란하게 뜬 무지개를 보기 어렵다. 분명 그곳에 존재함에도 대부분은 모르고 지나간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와 어려움도 이와 같다. 분명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이번 사람 이슈에서는 우리 그리고 나의 주변, 성소수자들의 자세한 이야기와 어려움을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 9월 21일, 기자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사무실에서 오소리 상임활동가와 슈미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슈미 활동가님께서는 정보 보호와 익명을 원하시기에 사진엔 오소리 상임활동가만이 등장한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오소리 행성인에서 오소리라는 이름으로 상임활동가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슈미 슈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병원 노동자이며, 현장 노동자로서 자부심도 강해요.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워낙 좋아해서 일터와 행성인에서도 노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 인터뷰에 응하는 중인 오소리 상임활동가.
Q. 두 분께서 활동하고 계신 행성인은 명칭과 홈페이지의 소개 글 모두에서 ‘실천하는 것’, ‘행동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로 직접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떤 계기와 마음으로 행성인에서 행동하기 시작하셨나요?
▶오소리 제가 행성인 회원이 된 건 대학교 3학년 때예요. 학교에선 커밍아웃을 안 해서 생활이 아주 답답했어요. 그러다 행성인에 오니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그 해방감 덕에 애착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네요. 활동가 일을 전업으로 하게 된 계기는 4학년 때 교양으로 들은 철학 수업이 결정적이었어요. 당시 수업에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라는 걸 배웠어요. 떠올리자면,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게 긍정적이다’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걸 배우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진정한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사는 내가 긍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진 않았어요. 해당 수업 말미에 교수님께서 자신의 평생을 다 바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때 제가 정말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어요,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고. 그제야 저도 깨달았죠. ‘아, 나는 정말 인권운동을 하며 살고 싶구나’. 학교에서 숨기고 살았던 것처럼 사회에 진출해서도 숨기고 살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슈미 저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에요. 취직할 때까지도 성소수자 커뮤니티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인권 단체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취직하고 1년 정도 지나고서 문득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막연히 검색 포털에 성소수자를 검색하고 행성인을 알게 됐어요. 우연하게도, 마침 회원 모임을 한다고 해서 와보게 됐고요. 그때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행성인의 ‘밝은 분위기’였어요. 언론에 비치는 대다수 성소수자의 이야기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행복하고 싶었고, 그런 모습을 행성인에서 보게 된 거죠. 당일 행성인 일정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세월호 집회에 같이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사실 전 혼자만 슬퍼하던 사람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감정과 온도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함께하는 걸 그날 처음 보게 됐어요. “아,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나는 혼자가 아녔구나”라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후로는 행성인과 함께하며 먼저 용기 내서 말하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너무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심성이 많음에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두 분 모두 자신을 드러내기 전엔 ‘답답함’을 많이 느끼신 것 같아요. 주로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셨나요?
▶오소리 연애 사실 자체를 숨겨야 했던 많은 순간이요. 저는 연애 중인데 학교에서는 솔로인 거죠. 여느 이성애자 커플이 하는 것처럼 저도 애인과 데이트도 하고, 주변에 자랑도 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싶은데 그런 사소한 것들조차 못 하는 게 가장 답답했던 것 같아요.
▷슈미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미래가 안 보였던 게 가장 답답했어요. 미디어에 나오는 퀴어들은 어둡거나 우울한 모습이 많고, 퀴어 커뮤니티를 봐도 2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었어요. 일정한 선례를 찾을 수 없어서 제가 어떻게 늙어갈지 안 보였던 거죠.
Q. 행성인 웹진 ‘랑’을 보니 회원 이야기 카테고리에 정말 다양한 글이 게시돼 있고, 소모임도 많이 형성돼 있더라고요. 이런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으셨는지 궁금해요.
▷슈미 행성인에는 ‘큐리블’이란 운동 모임이 있어요. 저는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속도를 맞춰 살아가고, 또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고 있어요. 예를 들어, 행성인에는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약속’이 있어요. 그 때문에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모임을 해야 해요. 비건을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비건 음식을 준비하고, 휠체어를 타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엘리베이터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가는 등의 일이 당연하게 이뤄져요. 사실, 이런 사소한 연대와 배려가 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하지만 활동을 하면서 그러한 연대가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 좋아요.
Q. 행성인에는 성소수자가 아닌 분들도 함께한다고 들었어요. 그런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찾아오시나요?
▶오소리 보통 찾아오실 땐 정말 연대하는 마음으로 찾아오세요. 친구나 가족 중에 성소수자분이 있다든지, 다른 인권운동을 하는데 성소수자들과도 함께하고 싶다든지 등의 이유로 찾아오세요.
▷슈미 당사자냐, 당사자가 아니냐는 이제 큰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는 사람이란 게 중요한 가치죠.
Q. 슈미님은 행성인 웹진에 <나, 성소수자 노동자>를 기고하셨어요. 글을 준비하며 만난 여러 성소수자 노동자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슈미 성소수자와 관련한 활동을 하며 언론 보도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언론에는 주로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우울한 이야기나 차별받는 사례만 보도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제가 만나본 노동자들은 항상 슬프지 않았어요. 자부심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고요. 그래서 행성인에서 쓰는 글에는 그런 순간을 하나라도 좋으니 꼭 담고자 노력해요.
지금 떠오르는 분은 버스 노동자 그랑 님이네요. 그분은 자신의 노동이 타인의 일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많은 자부심을 느끼고 계셨어요. 또, 노동조합에서 성소수자와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 간 연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엔진 활동가님 등 많은 분의 이야기가 기억나요. 자신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이야기를 해주시고 시간을 내주신 모든 분이 마음에 남아요.
Q. 슈미님이 보시기에 현재 노동 현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어느 부분이 발전했고, 어느 부분이 부족한가요?
▷슈미 노동 현장의 분위기는 퀴어 친화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주 조금씩이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주변 동료들에게 알리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는 인식도 생겼고요. 노동조합 차원에서도 단체 협상이나 일상에서 관련 문제를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하는 사람도,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방향의 문서도 많아졌어요. 여전히 아쉬운 건 노동자를 지켜줄 안전망이 부족한 거예요. 예를 들어, 혐오 발언을 들은 일부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노동자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아요. 노동자를 지켜주는 벽이 너무 얇죠.
Q. 오소리님은 거절될 걸 예상하고도 혼인신고를 시도하시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 부부 배우자로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라는 소송을 청구해 지난 7월에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셨어요. 소송부터 판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오소리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요. 신청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어요. 가장 처음엔 된다는 답변을 받아서 자격이 인정됐어요. 그런데 언론 인터뷰를 하고 난 뒤 돌연 취소가 된 거예요. 억울했죠. 저는 약 8개월 정도 아무렇지 않게 그 권리를 누리며 살았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뺏긴 거예요. 너무 화가 났어요. 줬다 뺏긴 권리, 나의 권리를 되찾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소송에 끝까지 임했던 것 같아요.
Q. 최초로 대법원에서 동성 부부의 권리를 인정하게 됐지만, 여전히 혼인 평등 의제는 저희 사회에 남아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오소리 목표는 당연히 동성혼이에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누려서 잘 모르지만, 이성 부부가 함께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약 1,000가지라고 해요. 결혼 하나만으로 매우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거죠. 저는 그중 딱 한 가지를 4년 동안의 소송으로 얻어낸 거고요. 남은 999가지를 하나하나 소송하기에는 인간의 삶은 유한하잖아요. 매우 힘든 시간이기도 하고요. 이 모든 걸 한 번에 얻어낼 수 있는 건 동성 결혼인 거예요.
Q. 요즘 부쩍 성소수자와 관련된 콘텐츠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해요. 우리 사회가 전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 같아요.
▷슈미 저는 퀴어 분들이 방송에 많이 나오는 게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게이 하면 누구 이런 식으로 대표적인 인물만 떠올랐었어요. 최근에 OTT에서 프로그램을 봤는데, 일상 밀착형으로 퀴어 분들이 나오는 걸 봤어요. 그걸 보면서 퀴어 미디어나 콘텐츠가 풍부해졌다고 느껴요. 그동안은 퀴어 대다수가 인플루언서로서의 삶으로 미디어에 나왔거든요. 솔직히 미디어에 보이는 퀴어의 삶이 일상처럼 와닿지는 않았어요.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요즘은 일상 이야기도 나오는구나 싶어요. 그 모습이 퀴어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알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다양한 연령, 직업, 지역의 성소수자가 더 많이 미디어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Q. 지금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며 어려움을 겪거나, 차별과 편견이 두려워 본인을 드러내지 못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오소리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큼은 아니라고 봐요. 차별과 혐오가 유난이라서 잘 보이는 거예요. 사실 대다수는 별로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겪어 보니까 혼자 고립되는 건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돼요. 어렵겠지만 자기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부터 차근차근 자신을 드러내 보세요. 상대가 퀴어를 혐오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혐오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죠. 그런 사람과의 인연에 너무 큰 미련을 두지 않았으면 해요.
주변에서 누군가 한 명이 커밍아웃하면 그걸 듣는 사람도 본인의 일이 되는 거예요.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인식이 변화하게 돼요. 실제로 제가 커밍아웃했을 때 주변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해 줬어요. 물론 처음은 두려워요, 저도 두려웠고요. 하지만 그 작은 용기가 본인에게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어요.
▷슈미 스스로 행복해지는 데에 집중하면 좋겠어요. 본인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요소 중 하나가 퀴어인 것뿐이에요. 물론 너무 중요한 요소지만, 이것이 나를 우울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노동자 후배들에게는 예상보다 일터가 더 당황스럽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학교보다 노동 현장에서 무례한 말을 많이 들어요. 그래서 일터를 떠나는 분도 많았고요. 저는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으면 일터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텼으면 좋겠어요. 함께 버티고 꼭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노동 현장을 바꾸는 일에 함께하면 좋겠어요. 이건 이미 노동 현장에 계신 선배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에요.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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