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빈 강의실,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한 구내식당. 계절 학기 수업마저 끝난 2월의 캠퍼스는 추운 겨울바람까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도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가치 있는 건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법.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학생들이 떠나가도 우리 학교 캠퍼스를 지키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학교를 빛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한 값진 여정. 그 첫 경유지로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지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CBNU 스포츠센터를 찾았다.
체육진흥원 김광명 수영 주임지도자님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체육진흥원 수영 주임지도자 김광명입니다. CBNU 스포츠센터 수영장 관리 운영을 맡고 있고, 사범대 체육교육과 시간강사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시고, 박사과정 수료까지 하셨는데, 과거와 지금의 학교를 비교하면 가장 크게 바뀐 게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일단 전보다 시설적인 측면이나 인프라 수준이 많이 좋아졌어요. 제가 학부생 때는 교내에 CBNU 스포츠센터 규모의 시설이 생기고, 그곳에서 운동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꿨어요. 그 시절에는 훈련 때마다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청주 실내수영장에 가야 했죠. 물론 관련 비용은 학교에서 지원해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멀리 왕복해가며 훈련하는 게 불편했었어요.
전국 소년체전 1위, 대통령 배 수영대회 1위 등 수상 이력이 화려하시던데, 수영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옛날에는 YMCA 스포츠단이라고 청소년 스포츠 단체가 있었는데, 거기서 처음 수영을 접했어요. 학교에서 육성하는 엘리트 학생 선수, 이런 느낌보다는 그냥 생활체육 느낌으로 시작한 거죠. 어렸을 적에 제가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엄청나게 컸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키가 170cm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운동 한 번 해보라는 권유를 워낙 많이 받았어요. 마침 시작하자마자 운 좋게 성적도 잘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영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수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후배들한테 자리를 내줘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지만, 아무래도 그때가 제일 힘들죠. 정신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이 불안하니 몸은 더 무리해서 잔 부상이 생기고, 그렇게 슬럼프가 오더군요. 그리고 이 슬럼프가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슬슬 깨닫는 겁니다. ‘아,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데 힘이 돼준 것이 있었나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요. 특히 가족들이 해줬던 조언들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려놔야 할 때도 있는 거야”라는 조언에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다음 날 바로 노량진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당시 군대 갈 때가 돼서 저는 공군사관학교 교수요원 선발 시험 준비에 뛰어들었죠. 한 6개월 지났을까, 초시는 떨어졌어요. 딱 6개월 더 공부해 1년을 채우고 합격했는데, 공군사관학교 항공체육과 조교수로 근무했어요. 수험생활 중에도 가족들 조언이 큰 힘이 됐죠. 큰누나, 작은누나가 모두 학교 선생님인데,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사실 가족이 아니라면 쉽게 꺼낼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말도 있었지만, 그때 저는 어떤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기에 오히려 저한테 도움이 됐어요.
‘수영’은 주임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부탁드려요.
제게 수영은 ‘경험’이에요. 저한테 수영은 그냥 ‘운동’이 아니에요. 수영 덕분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직장도 얻을 수 있었고, 공부도 할 수 있었고, 경제적 혜택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거의 인생의 전부라고 볼 수 있죠. 참 고마운 존재예요.
마지막으로 수영을 막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요?
자기는 물을 무서워하는데 그걸 좀 극복해보고 싶다고 물어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드리는 말씀이 ‘일단 시작하라’예요. 물이 아무리 무서워도 3개월 정도 하다 보면 그 트라우마는 극복이 되거든요.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면 꾸준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할 거면 안 하는 것만 못합니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수영을 아예 못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수영을 어설프게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걸 넘어서게 해주는 게 바로 ‘꾸준함’입니다.

체육진흥원 김규성 헬스 주임지도자님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CBNU 스포츠센터에서 헬스 주임으로 있는 김규성입니다. 회원님들 개인 PT와 전반적인 시설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주임님은 언제 헬스에 입문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육상을 했는데, 100m 단거리 선수였어요. 선수 생활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했어요. 모든 운동선수가 그렇겠지만 단거리 선수들은 특히 헬스를 많이 합니다. 훈련 내용 중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이 꽤 많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헬스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헬스를 업(業)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학부 2학년 즈음,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수술을 했고,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도 그만두게 됐어요. 막막했죠. 초등학교 때부터 이제껏 해왔던 건 운동뿐인데. 그래서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운동도 좋아하고, 내가 알고 있는 걸 남에게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더라고요. 또 뭣보다 헬스가 ‘저항’을 받는 운동이다 보니 다치기가 쉽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운동하다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전문적으로 헬스를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업으로 삼게 됐어요.
직업으로서 헬스 트레이너는 어떤 직업인지 설명 부탁드려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할 수 있으니까요. 회원님들의 성취를 보는 것도 정말 뿌듯하고요. 근데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제가 트레이너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트레이너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수입도 불규칙하고, 저도 불안정한 직업이라 생각했어요.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딸이 결혼한다고 하면 환영할 부모님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자필로 편지 세 장을 써서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드렸어요. 제 직업은 어떤 것이고, 수입은 어느 정도이며, 제가 어떤 마음과 비전으로 이 직업에 임하고 있는지를 편지에 담았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항상 헬스 트레이너라는 직업에 진심이에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트레이너로서 오랜 시간을 보내신 만큼 수많은 수강생을 만나보셨을 텐데요.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을까요?
저를 따라 트레이너가 된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친구랑 거의 1년 가까이 레슨을 함께 했는데, 레슨 초반에 그 친구의 운동 목적은 체중 감량이었어요. 키도 덩치도 컸던 친구인데, 꾸준히 운동하면서 변화를 느끼다 보니 이제 욕심이 생기는 거죠. 살을 빼보니 근육을 키우고 싶고, 근육을 키우니 이제 바디프로필도 찍고 싶은 거죠. 그렇게 단계별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가 회원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회원이 아니라 같이 운동하는 파트너가 된 거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고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자기도 트레이너가 됐다는 거예요. 단지 체중 감량 때문에 시작했던 운동이었는데, 이제는 저와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됐다는 게 선생으로서 참 뿌듯하더라고요.
그럼, 가장 안타까운 회원들도 있을까요?
저마다 헬스를 하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목적이 근력증가와 다이어트예요. 특히 다이어트는 식단 조절이 필수인데 여간 힘든 게 아니죠.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필요한 영양소들을 제때제때 알맞은 양으로 챙겨 먹어야 하니 쉽지가 않아요. 그러면서 운동도 고강도로 해야 하고요. 힘든 과정이다 보니 많은 분이 중도에 포기하세요. 그게 안타까워요. 이분이 조금만 더 하면 목표까지 갈 수 있었는데, 성공할 수 있었는데 포기한다는 게 트레이너로서 참 안타깝죠. 제가 트레이너로서 이분을 더 잘 관리했다면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헬스 트레이너를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요?
‘회원 한 분 한 분의 성취를 보기 위해 이 일을 한다’라는 마음가짐이죠. 제가 올해 34살이고, 트레이너가 된 지 10년이 넘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회원 한 분 한 분을 돈으로 볼 수도 있어요. 개인 강습을 많이 하면 그만큼 수입이 늘어나니까요. 물론 돈 버는 거 좋죠. 그런데 그러다 보면 지쳐요. 젊은 친구들이 이 분야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금방 관두는 이유가 다 회원들을 돈으로만 보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떻게든 회원님의 건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로 트레이닝을 돕고, 마침내 원하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나오는 회원님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성취감을 느껴요. 이것이 제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일에 진심으로 최선이신 주임님만의 ‘인생 동력’은 무엇인가요?
역시 가족들이죠. 미혼의 총각이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마음가짐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저는 지금 6살과 2살인 아이들의 아빠예요. 종일 센터에서 말하고, 몸 쓰고, 사람들 상대하다 보니까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정말 피곤해요. 저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하루를 시작해요. 새벽 5시부터 7시까지는 개인 운동하고, 집 오자마자 아이들 유치원 데려다준 후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한 다음 2시간 동안 또 개인 운동을 해요. 이 일과를 모두 마치면 말 그대로 녹초 상태예요.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그 피로가요, 현관문을 딱 열고 들어갔을 때 “아빠~” 하면서 달려오는 첫째, 옹알이하면서 아장아장 걸어와서 안기는 둘째만 보면 바로 풀려버려요.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도, 하루의 고단함도 다 눈 녹듯 사라지죠. 자기 전에 아이들이랑 나란히 누워서 오늘 어린이집 어땠냐고 물어보면 막 쫑알쫑알 얘기하는데,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큰 행복이자 인생의 버팀목이에요.
엄준인 기자
jnan0203@cbnu.ac.kr








엄준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