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이렇게 예민해?” 요즘은 젠더 이슈를 언급하는 것도, 언급하지 않는 것도 심판대에 오르는 세상이다. 혹자는 무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심하려 애쓰는 반투명의 풍경들. 불가촉의 터부이자 성역이 된 젠더 이슈는 어쩌면 아주 간단한 계기로 피부에 와 닿기도 한다. 드라마틱한 악역도, 비련의 선역도 없는 만화로 우리 주변의 ‘먼지 차별’을 가시화하는 수신지 작가를 만나 봤다.
*먼지 차별 :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도처에 깔린 아주 작은 먼지만큼 해로운 소소한 차별’을 뜻하는 말로 성차별이나 나이·성정체성·장애 등 소수자들에 대한 미세하지만 만연해 있는 차별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수신지 작가의 첫 만화는 다름 아닌 직접 겪은 난소암 투병기를 그린 <3그램>이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20대 후반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만화가로서 데뷔했어요. 처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다거나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그저 첫 만화인 <3그램>에서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만화라고 생각해 시작하게 됐죠. 그렇게 만화를 그려보니 생각보다 즐거웠고, 그래서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시작은 개인적인 계기로부터였지만, 이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며느라기>, <곤>은 젠더 이슈를 비롯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부장제에서 기인한 갈등을 포함해 젠더 이슈를 작품 주제로 선택한 건 제가 여자로서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차별과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제가 실제로 경험한 문제가 아니면 작품으로 제작하는 데 무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젠더 이슈는 제가 여성으로 살면서 일상 속 먼지 차별을 실감하고 있고, 동시에 제 주변 여성들도 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만화로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요즘 세상에 저런 집이 어딨어’
흔히 젠더 이슈를 다룬 만화라고 하면 한쪽 성별이 악독하게 그려지리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신지 작가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친절한, 상식 범위 내의 사람들이다. 특히 주요 남성 등장인물들은 흔히 말하는 ‘스윗한’ 남자다. <며느라기>의 무구영이나 <곤>의 노민태는 호감형의 다정한 인물로, 미디어에 노출된 스테레오 타입의 악역과는 결을 달리한다.
“악역을 너무 악역처럼 그리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돼 버리니까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등장인물들을 평균 이상의 젠틀한 인물로 설정했어요. 이를테면 못된 시아버지, 꼰대 상사와 같은 악역이 나왔을 때 독자들은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끼기 어려워요. 실제로 본인이 그런 악역에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저 만화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나의 이야기라거나 우리 주변 현실의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등장인물에 이입해 ‘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라고 느끼면 문제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극단적인 인물을 배제한 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이야기를 풀어낸 덕분일까. 작품의 독자들은 하나같이 ‘현실적이다’라는 평을 남긴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제목에서처럼 며느리가 주인공이기에 일부에서는 이제는 하나의 클리셰나 다름없어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으로 일축되기도 한다. 이른바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의견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만화를 다 보고 나서 피드백을 주는 독자분들 중에 ‘역시 여적여다’, 이렇게 결론을 내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좀 더 제대로 표현을 해야 했는데, 혹시 부족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데도 ‘여적여’는 정말 못된 단어인 것 같아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기보다는 우리가 가부장제 아래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자도 여자를 혐오할 수 있는 것뿐이니까요. 예전에는 가부장제가 훨씬 더 심했고, 그렇기에 아무래도 연세가 있는 분들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은 최소한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감각이 있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죠. 그것은 우리가 가부장제 아래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여적여’ 외의 비난 의견도 존재한다. ‘요즘 세상에 저런 집이 어딨어?’ 즉, 내 세상 밖의 일이라는 무심한 반응이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의외로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요. 집안일을 밖에서 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라는 말도 있고요. 그 때문에 가정 내의 문제는 안으로 곪아있는 경우가 많죠. 실제로 우리는 당장 각자의 가정 내 문제는 잘 알지만 다른 가정이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잖아요. 저도 <며느라기>를 연재하면서 친구들이 ‘사실은 나도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어요. 전에는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집안에서 벌어지는 부끄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모두에게 열린 소통의 장
하지만 민감한 이슈일수록 공개적인 플랫폼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며느라기>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6개월간 약 100회에 걸쳐 연재됐다. SNS라는 플랫폼의 특성상 일반적인 웹툰 시장보다 더 많은 독자에게 읽혔고, 이는 독자와 독자뿐만 아니라 독자와 작가 본인까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연재 당시 <며느라기>를 게시한 SNS에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는 토론이 벌어지는 게 좋았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어디서 이런 얘기를 터놓고 했을까 싶었죠. 매화 연재할 때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기에 완결 후에는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장소가 없어져서 아쉬웠어요. 그러던 중 지난해 <며느라기>의 드라마화를 통해 그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다시 소통을 할 수 있는 구실이 돼 뿌듯했죠. 또 <며느라기> 연재 당시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독자로부터 쪽지와 메일을 받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되게 여러 가지 반응이 있었는데, 며느리 입장의 독자들이 자신의 사연을 보내기도 했고, 일부 사람들은 만화가 너무 불편하니 연재를 중단하라고 하기도 했어요. 연재할 때 제가 생각한 독자는 기혼 여성이었는데 의외로 젊은 대학생 여성도 ‘엄마 생각이 난다’라며 뜨겁게 공감을 해 주셔서 놀랍기도 했고요”
하지만 남녀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페미니즘’이란 한 마디만 던져도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요즘. 소통의 과정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제 만화에 대해 ‘안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라면서 보는 것을 거부하기도 해요. 그래서 기혼 여성 독자 중에서 남편에게 이런 만화를 보여주고 싶은데 안 볼 것 같다는 반응이 정말 많았어요. 부부싸움 화해 과정에서 이 책 읽기를 조건으로 건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여성 독자들은 함께 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와서 그러는지, 아니면 실제로 관심이 없는지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가 봐요”
그렇다면 수신지 작가는 이런 논의들이 공개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젠더 이슈와 관련한 논의를 할 때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을 들어보면, 모두가 어떤 이슈에 대해서 알 수는 없는데 일부 사람들은 모든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의견을 위한 의견을 내는, 어디서나 한마디 말을 보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자기가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들어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천천히, 더 좋은 세상을 향해
<며느라기>의 가부장제, <곤>의 임신중절, 그리고 <순간이 삶이 되지 않도록>의 십대 성매매까지. 수신지 작가는 담담하고 첨예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이슈를 담아낸다. 그중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자칫하면 눈치채기 어려운 폭력으로, 그의 만화 속 미세한 ‘먼지 차별’과 결을 같이한다.
“만화의 소재는 때로는 신문 사회면에서, 그리고 주간지나 여성신문에서 얻어요.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한겨레에 실린 기사를 보고 처음 경각심을 가지게 됐어요. 흔히 쓰이는 이 단어가 어쩌면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강요하는 말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그때 읽었던 기사 내용 중에,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성적 빡치심’이라는 말이 정말 속이 시원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마침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돼서 사용하게 됐어요. ‘당연히 부끄럽고 얼마나 수치스러울까’라는 생각은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강요하죠. 사실 수치스럽다기보다 열 받는 감정이 앞서는 게 맞는 데 말이에요”
이렇듯 그의 만화는 주변의 사소하다면 사소할 문제부터 뉴스에 나올 법한 묵직한 주제까지 넘나든다.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항상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동글동글한 그림체의 무던한 대사로 읽는 만화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부담 없이 읽히는 만화를 그리는 것은 항상 유의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그게 특별히 제 만화의 장점이라기보다는 만화라는 장르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주제를 쉽게 설명할 수 있고, 멘트가 다소 강하더라도 그림의 이미지가 부드럽거나 재치 있다면 완화돼 보일 수 있죠”
마지막으로, 수신지 작가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0대 독자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제가 <곤> 연재를 준비할 때 낙태죄 폐지 시위를 돌아다니면서 20대 초반 여성들을 많이 봤어요. 인터넷상에서 글로만 봤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 대부분이 20대 여성들이더라고요. 이런 사실이 놀랍고, 추운 겨울에 밖에서 시위하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즐거운 모습으로 참여하는 게 보기 좋기도 했어요. 낙태죄의 존치를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기성세대였기에, 저도 같은 기성세대로서 미안했고요. 하지만 동시에 20대가 미래의 희망이고, 그래서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해달라고 하는 건 너무한 일인 것 같아요.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무리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바뀌려는 노력은 여러 군데서 일어나고 있고, 결국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거예요. 우리 모두가 이미 더 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단 하나의 사람으로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고, 서로는 필연적으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어느덧 소모적인 비난으로 점철된 사회는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나와 같지 않아 사랑스럽고, 다르기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 때문에 우리는 다시 입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코앞으로 다가온 더 나은 세상을 기다리면서, 여태껏 그래왔듯이.
양서영 기자
ysyoung@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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