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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10.19 월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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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여경
성평등에는 동의하면서, 왜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은 피할까
제 996 호    발행일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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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과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올해 3월 발표된 입소스와 킹스칼리지런던 세계여성리더십연구소의 ‘2026 세계 여성의 날 조사’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문항에 동의한 한국 응답자는 21%였다. 조사 대상 29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로, 29개국 평균 39%에 크게 못 미쳤다. 한국 응답자의 동의 비율은 남성 13%, 여성 28%로, 29개국 남성 평균 31%, 여성 평균 44%보다 각각 18%p, 16%p 낮았다. 조사는 2025년 12월 24일부터 2026년 1월 9일까지 29개국 성인 2만 3,26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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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페미니스트다’ 동의율 ■한국 □29개국 평균.

  기자가 20~30대 남성 6명과 20대 여성 3명을 개별 인터뷰한 결과에서는 성평등에 대한 지지와 페미니스트라는 자기 정체성 사이의 간극이 나타났다. 9명 중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성차별이 해소돼야 한다는 데는 9명 모두 동의했다. 이들의 답변과 노동자연대 성지현 활동가의 설명을 종합하면,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꺼리는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 일부 운동 방식에 대한 반감,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피하려는 태도다. 다만 9명의 인터뷰만으로 한국 사회 전체의 인식이나 각 이유의 비중을 판단할 수는 없다.

온라인에서 접한 부정적 이미지

  남성 6명은 ‘페미’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렸다. 20대 남성 ㄱ 씨는 “‘페미’라는 말은 페미니즘과는 다른 용어가 된 것 같다”라며 “‘페미니즘’이라고 풀어 말하고 ‘페미’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남성 6명 모두 이런 이미지가 형성된 경로로 직접 경험이 아닌 온라인 정보나 주변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꼽았다. ㄴ 씨는 남중과 남고를 나왔고, 대학에 와서 여성 동기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학과에서도 밖에서도 페미를 비난하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은 없으며, 페미의 부정적 이미지는 모두 인터넷을 통해 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생각은 없었는데, 커뮤니티와 댓글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페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언제 형성됐는지 묻자 6명 중 4명은 특정 시점을 짚지 못했다. ㄷ 씨는 미투 운동 무렵까지는 페미니즘을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지만, 온라인에서 ‘페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계속 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특정 사건이 계기가 됐다기보다 온라인상의 여러 평가가 누적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ㄱ 씨는 “일반적으로 나를 포함해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다”라며 “아무래도 온라인상에서 형성된 이미지가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성 3명의 답변에서도 온라인에서 접한 페미니즘의 이미지가 극단적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20대 여성 ㅁ 씨와 ㅂ 씨는 페미니즘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ㅁ 씨는 온라인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ㅅ 씨는 성평등에는 동의하지만, 극단적인 주장을 많이 접해 페미니즘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다고 답했다. 이처럼 남녀 응답자 모두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된 경로로 온라인을 지목했다.

일부 운동 방식에 대한 반감이 전체에 대한 거부로

  ㄹ 씨는 시위 현장에 관한 군 동기의 이야기를 듣고 ‘페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시위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17년 군대에 갔는데 그 시기에 페미 시위가 뉴스에 많이 나왔다”라며 “동기들이 외박을 다녀왔는데 서울에서 군복을 입고 페미 시위 현장 근처를 지나다가 멀리서 남성을 비판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그때 처음으로 ‘페미가 남성 혐오를 부추기는 집단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라며 “관련 기사를 그 뒤에 찾아봤다”라고 전했다.
  성지현 활동가는 일부 페미니즘 운동의 방식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그는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은 급진 페미니즘이고, 그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는 분리주의적 페미니즘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태도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의 도덕주의적 비판 방식은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규탄받을 수 있다는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 방식에 대한 피로감과 반감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가 제기한 핵심 질문은 이러한 방식이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는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관리자가 여성 노동자를 성추행한 사건에 노조가 대응해야 할 때, 남성 조합원까지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면 함께 싸울 사람들을 밀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을 일괄적으로 가해자로 보는 태도가 성차별에 맞서는 연대와 운동에 대한 지지를 약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일부의 태도를 운동 전체의 성격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성지현 활동가는 혜화역 시위(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을 계기로 2018년 5월 시작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의 3차 집회부터 직접 참가했다. 그는 당시 시위에 젊은 여성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했고, 이들은 성차별이 해소되지 않는 현실과 불법촬영 문제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분노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의 협력을 중시한 주류 여성단체가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던 비판을 혜화역 시위가 제기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운동을 이끈 일부의 정치적 입장과 참여자들의 문제의식, 운동의 성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일부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이 페미니즘 전체에 대한 거부로 번질 때, 성평등에 동의하는 사람까지 그 이름을 피하게 될 수 있다. 성지현 활동가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지 않는 것과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봤다. 넓은 의미에서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상과 운동을 페미니즘이라고 보면,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남성들도 대체로 동의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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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불편함을 피하려는 침묵

  인터뷰에서는 부정적 이미지와 논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일상에서 이 주제를 피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남성 6명 중 여성 지인과 이 주제로 대화해 본 사람은 없었다. ㄱ 씨는 “일부러는 안 하고, 하게 된다면 그렇게 길게 대화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이런 대화는 서로 불편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ㄱ 씨는 이 주제에 관해 말을 아끼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군대나 출산, 육아, 유리천장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남성으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애매하다. 저도 남성 쪽의 이익을 어쨌든 대변하는 처지라, ‘그건 아니다’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네 말이 맞아’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는 말을 아끼게 된다”라고 말했다.
  여성인 ㅁ 씨와 ㅂ 씨도 이 주제가 나오면 대화를 피하거나 의견이 없는 척한다고 답했다. ㅁ 씨는 “친구끼리도 그런 얘기는 꺼린다. 당연히 남자들한테는 더더욱이 안 한다”라며 “대화 중에 페미를 주제로 꺼내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 같아 말하지 않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남자들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별로 알고 싶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ㅂ 씨는 “대화 중 어쩌다 페미 얘기가 나오면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척한다”라며 “혹시나 서로 감정 상할 일을 만들기 싫어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에 관해 평소 많이 생각하지 않고, 요즘은 그걸 주제로 대화하는 일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갈등을 피하려는 태도와 함께,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문제가 평소 관심사에서 멀어졌음을 보여준다.
  대화를 피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응답자마다 달랐다. ㄷ 씨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페미니즘을 안 좋게 보는 것이 당연해졌다는 생각에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된다”라고 답했다. 이는 ㄷ 씨의 개인적인 인식으로, 여성 전체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반면 ㄱ 씨는 앞서 말했듯 남성으로서 어느 쪽에 동의하거나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로 말을 아꼈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 이들에게는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밝히라는 요구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는 셈이다.
  한편 남성끼리 있는 자리에서는 ‘페미’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ㄹ 씨는 “공대에 있다 보니 남자끼리만 있을 때는 ‘페미 전사’ 같은 얘기를 한다”라며 “좀 안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 주제를 둘러싼 대화를 피한다고 해서 부정적 인식까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이름에 대한 거부와 성평등에 대한 반대는 다르다

  성지현 활동가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보다 구체적인 성차별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임신 중지에 대한 접근성이나 출산에 따른 해고.불이익처럼 당사자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면, 남녀가 함께 권리 보장과 차별 해소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을 바꾸는 대중운동이 부족할수록 에너지가 온라인의 개인 간 싸움으로 쏠릴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자신도 2018년 시위에 참여한 뒤 불법촬영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다며, 대중운동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더 개방적으로 열리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반발을 뜻하는 ‘백래시’의 규모가 과장돼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는 1991년 저서 <백래시>에서 1970년대 여성운동의 성과에 대한 반발로 198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반페미니즘 흐름을 분석했다. 성지현 활동가는 “의식적으로 안티 페미니스트를 내세우는 세력은 소수다. 최근 부상한 극우 세력은 분명 여성 차별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권리 자체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한다. 이들의 주된 공격 대상은 중국이고,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성소수자를 공격하고 있다”라며 “반발의 크기를 과도하게 보면 성평등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수세에 몰렸다고 느끼고 남성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다만 이번 조사와 인터뷰로는 조직적인 반페미니즘의 규모나 백래시의 정도를 판단할 수 없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한국 응답자의 비율이 29개국 중 가장 낮았다는 사실을 곧바로 성평등에 대한 지지가 낮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인터뷰에 응한 9명도 성차별 해소에는 동의하면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이들의 답변에서는 온라인에서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 일부 운동 방식에 대한 반감, 관계의 불편함을 피하려는 태도가 나타났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이 왜 꺼려지는지 이해하려면, 성평등이라는 목표와 그 이름에 덧씌워진 이미지를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여경 기자
yanaatyourside@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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