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여덟 시, 1분 1초가 바쁜 등굣길. 전재희(대전광역시 유성구·18) 학생은 오늘도 버스 정류장 앞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무선이어폰을 꽂은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앞만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언뜻 보면 노래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재희 씨는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듣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이냐고? 오늘의 주인공, 오디오북에서 바로 그 답을 찾아보자.
읽는 독서에서 ‘듣는’ 독서의 시대로
먼저 오디오북이란, 책을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들을 수 있게 낭독해 주는 디지털 콘텐츠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디오북은 지난 2000년 8월, 오디세이 닷컴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오디오북 사업은 큰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당시 오디오북 콘텐츠는 ▲CD ▲MP3 ▲카세트테이프 등의 기기 형태로 제공됐기 때문에, 종이책보다 상대적으로 제작 단가도 높았고, 휴대성 측면에서도 다소 메리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수의 출판사가 오디오북으로 제작한 출판물이 종이책 판매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출판물을 오디오북으로 제작하는 것 자체를 꺼렸던 것도 오디오북 시장 확대에 큰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정보기술(IT)과 오디오북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스마트폰과 스마트 스피커 등 전자기기의 발달이 오디오북의 성장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밀리의 서재 독서라이프팀 전솜이 매니저는 “오디오 콘텐츠 이용 수단의 발달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익명의 출판문화사업 종사자 A 씨는 “AI 스피커, IoT 등 오디오북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기의 발달로 오디오북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라고 의견을 보탰다.
물론 IT와 전자기기의 발달만이 오디오북 시대를 여는 유일한 열쇠였던 것은 아니다. ‘구매’가 아닌 ‘구독’ 형태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소비 경향도 오디오북 시장의 주요 성장 요인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교보문고 eBOOK 사업팀 지영균 차장은 “권당 구매가 아닌 구독형 서비스로 포장한 무제한 대여 판매 시스템이 오디오북에 대한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오디오북 전문 업체인 ‘오디언소리’가 2006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2018년 상반기 기준 국내 오디오북 유료 이용 회원 수는 무려 35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00% 증가한 수치였다. 오디오북 관련 업체도 ▲윌라 ▲네이버 오디오클립 ▲밀리의 서재 등 오디오북을 주력 콘텐츠로 시장에 진출한 콘텐츠 플랫폼 기업부터 ▲교보문고 ▲알라딘 ▲YES24 등과 같이 출판업계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기업까지 합류하면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오디오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스토리텔’이 국내 오디오북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러한 오디오북 시장의 열기에 대해 지영균 차장은 “과거와 다르게 오디오북이 집중 조명.확산되는 이유는 주요 기업들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성공한 해외 ‘오디오북 사업’ 사례를 국내에 적용해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오디오북, 그 매력이 궁금하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 오디오북 시장의 이 같은 열기도 결국 오디오북에 열광하는 소비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오디오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디오북의 매력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봤다.
첫 번째는 바로 ‘편의성’이다. 종이책이나 전자책보다 눈도 덜 피로한데, 귀로 듣기만 하면 되니 시공간의 제약에서도 자유롭다. 실제로 지난해 트렌드모니터에서 진행한 오디오북 관련 인식 조사에 의하면, 오디오북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수를 기록한 항목은 ‘종이책/전자책에 비해 눈이 덜 피로하다(43.3%)’였다. 오디오북 마니아를 자청하는 이현진(성남시 수정구·37) 씨는 “나이가 좀 들기도 했고, 애도 있다 보니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 가만히 앉아서 글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힘이 든다. 그런데 오디오북은 그냥 편하게 듣고만 있으면 되니 피곤하지도 않고, 손도 가볍고, 부담도 없다. 덕분에 독서량이 많이 늘었다”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멀티태스킹’이다. 위에 트렌드모니터 조사 결과에 의하면 37%의 응답자가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멀티태스킹)’를 오디오북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에 대해 전솜이 매니저는 “오디오북이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라 생각한다. 일하면서 독서 욕구와 자기계발 욕구를 채울 수 있으니 많은 이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현진 씨도 “오디오북은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사람 가득한 지하철에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자기 전에도 휴대폰과 이어폰만 있다면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다. 오디오북을 접하기 전에는 그 시간에 주로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곤 했는데, 지금은 오디오북만 듣는다”라고 의견을 더했다. 지인들의 추천으로 오디오북에 입문했다는 이소희(서울시 강서구·27) 씨도 “종이책과 비교했을 때 오디오북의 가장 큰 장점은 멀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냥 배경음악처럼 틀어 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다. 가끔 음악이나 TV 대신 틀어 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경제적이라는 점이다. 오디오북은 금전과 시간적인 면에서 모두 경제적이다. 좋아하는 성우가 낭독하는 책을 듣고 싶어 오디오북에 발을 들였다가 오디오북 마니아가 됐다는 전재희(대전광역시 유성구·18) 학생은 “대여용으로 할인이 많이 들어간 책을 구매하면 싸게는 3천 원에서 보통 6천 원 남짓에 책 내용을 습득할 수 있다. 종이책을 중고로 샀을 때보다도 저렴하다. 또 전체 내용을 다 읽어주는 완독형 오디오북이 아닌, 중요한 내용이나 핵심 부분만을 읽어주는 ‘요약형’ 오디오북이 많은데 짧은 시간 안에 함축적으로 책 내용을 흡수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수요에 발맞춰 실제 국내 오디오북의 대부분은 2시간 이내 분량으로 ▲요약/축약(오디오북화 과정에서 책 내용을 핵심만 요약하고 축약하는 것) ▲발췌(일부 단편이나 목차만을 발췌해 오디오북화하는 것) 형태로 기획되고 있다. 추세가 이렇다 보니 지난 3월 기준으로 국내 오디오북 중 완독 형태를 띄고 있는 오디오북은 약 2,000권 정도뿐이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의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딜로이트는 올해에 전세계 오디오북 시장이 25% 성장해 35억 달러(한화로 약 4조 2655억 원) 규모까지 도달할 것이며, 시장의 약 75%를 미국과 중국이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오디오북 시장은 이미 지난 2017년에 매출액 15억 달러를 돌파했고, 7년 연속 2자리 수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2017년 미국보다 뒤지는 4.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오디오북 사용자가 약 5.5억 명을 돌파하면서 오디오북 시장의 급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오디오북 시장도 전망이 밝다. 글로벌 오디오북 기업 스토리텔은 올해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약 300억 원 정도이며, 향후 5년 안에 팟캐스트 등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포함해 조 단위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에 대해 지영균 차장은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아직 태동기다. 매출 규모가 크지 않을뿐더러, 콘텐츠의 수도 매우 적은 편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돼야 한다고 본다. 기관에서 주도하는 지원 사업으로 양적인 측면이 일부 해결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비싼 제작비용과 적은 유통 채널, 작은 소비 시장 등의 한계가 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일반 구매 고객보다는 도서관, 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장이라는 점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다만 최근 들어 오디오북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와 플랫폼 개선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국내 오디오북 시장의 성장 조건에 대해 전솜이 매니저는 “국내 오디오북이 보다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서율 저조 문제가 꼭 해결돼야 한다. 독서에 부담을 느끼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오디오북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 밀리의 서재라는 플랫폼이 잘되는 것도 사업적으로 중요하지만, 오디오북이나 여러 가공 콘텐츠를 통해 국민의 독서에 대한 부담이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접하며 독서와 친해지는 과정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지영균 차장은 “오디오북은 ‘책’의 또 다른 모습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기본 속성을 기반으로 한 읽기의 다른 방법이다. 눈이 아닌 ‘귀’로 책을 읽는 일이기에, 가볍게 접근하시되 깊이 있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라며 오디오북 소비자에게 짧은 부탁을 남겼다.
정윤채 기자
sunwillrise@chungbuk.ac.kr
민주희 기자
janeausten@chungbuk.ac.kr
이종우 기자
dlwhddn722@chungbuk.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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