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항상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다. 그런데 그 좋은 영화와 드라마에 배우의 열연만 있고,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음악이 없다면 우리는 그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 몰입감이 떨어지고, 명장면이라 생각한 부분도 어색한 장면으로 변할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음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요리의 양념처럼 장면에 알맞은 음악을 넣음으로써 장면을 완벽하게 완성해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사람, 김준석 음악감독을 만나봤다.

Q. 안녕하세요, 감독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드라마 음악의 음악감독을 하고 있는 김준석이라고 합니다. 현재 영상음악가들의 모임인 ‘무비클로저’의 대표로 있고,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상음악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Q.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음악감독의 길을 걷게 되신 건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릴 때 밴드 활동을 하면서 그저 유명한 밴드의 멤버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다가 우연한 기회로 영화음악의 길을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본격적인 음악 작업을 기대했지만, 청소와 배달 같은 잡무만 하면서 제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당시 영상 음악을 배울 곳은 대부분 유학을 가야 있었지만, 저는 유학을 다녀온다 하더라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개인레슨을 받으며 음악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그 외에 컴퓨터 미디작업이나 음악의 방향, 음악의 포인트 등은 스스로 좋은 영화를 찾아보고, 이것저것 직접 해보면서 익혔어요.
Q.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음악감독의 역할과 음악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쉽게 생각해서 음악감독은 자신이 맡는 작품의 모든 음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단순히 작곡가의 역할보다 작품의 내용, 캐릭터 등을 어떻게 관객 혹은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것인지를 음악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어느 부분에 어떤 음악을 어떤 볼륨으로 첨가할 것인지 등을 감독에게 제안하고 상의하며 방향을 잡습니다. 많은 대화를 통해 하나씩 완성된 음악들을 들려주고 상의하면서 고쳐나가고, 최종적으로 모든 음악이 결정되면, 음악녹음과 믹싱을 거쳐 최종 믹싱실에 전달됩니다.
Q. <펜트하우스>, <더 글로리> 등 감독님께서 참여하신 유명한 작품이 많은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물론 많은 사랑을 받은 <비밀의 숲>, <해를 품은 달>, <시그널>, <백일의 낭군님> 등의 작품들도 기억에 남지만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데뷔작품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6개월 동안 감독님께 거의 매주 새로운 음악을 들려드리고 만족하실 때까지 새로 작업하고 수정해서 들려드리기를 십여 주 동안 반복한 것 같습니다. 조수였을 때와는 달리 막상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되니까 압박감이 생각보다 심했어요. 많은 연주자분의 도움으로 완성한 음악이 영화에 들어가고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있을 때, 영화에 제 이름이 처음으로 앞에 등장할 때 그 순간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기분을 기억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항상 처음의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 김준석 음악감독이 참여한 대표작들.
Q. 사운드트랙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지, 어떤 음악성을 추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영상을 보고 음악을 만들었던 방식 때문인지 글보다는 영상을 봐야 음악이 떠오르는 편입니다. 그래서 음악의 방향, In Out 점 등을 정할 때, 마치 내 자신이 배우인 것처럼 호흡을 같이 해봅니다. 여러 번 보다 보면 갑자기 음악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렇게 떠오른 음악을 보완해 완성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카멜레온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추구하는 음악성은 없습니다. 어떠한 작품이 들어오든 매번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단순히 음악을 뽐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상에서 감독이 가장 바라는 것을 찾아가는 음악을 작업해 왔습니다.

Q. 영화음악과 작곡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영상 속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혹은 시청자)과 화면의 동일화입니다. 제 음악에 관객들이 때론 웃고, 울고, 공포심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해요. 가끔 음악을 기억 못 할지라도 보는 이들이 그 영화나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면 ‘내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작곡의 가장 큰 매력은 음의 높이, 길이 등에 따라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업 중에 어려웠던 점이나 문제가 생겨서 곤란했던 일이 있나요?
영화든 드라마든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작업이기에 많은 소통이 필요하고 각자 일을 해결하는 방식도 달라 종종 오해가 쌓이기도 합니다. 아주 오래전, 감독과 영상 전체의 음악 컨펌이 끝난 후 믹싱실에 갔더니 감독이 본인 마음대로 다 바꿔놓은 거예요. 그래서 항의했더니 나가 있으라 하더군요. 만약 생각이 바뀌면 해당 파트의 전문가와 상의하고 조율하는 것이 맞는데, 감독이 독단적으로 판단한 상황이라 그냥 나왔던 적이 있어요. 또 한 번은 감독과 편집자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가 음악 관련 영상에 대한 편집까지 도와준 적도 있어요. 이럴 때는 힘은 들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위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서 도와줍니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가나 작곡가가 있으신가요?
특별하게 누군가를 좋아하기보다는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하는 모든 음악가를 존경합니다.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한 음악가뿐만 아니라 때론 저에게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의 음악도 나름의 매력이 다 담겨 있어요. 강의하러 가서 제자들에게 배우고 자극받고 올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저는 모두를 존경하므로 틀에 갇히지 않고 저보다 훌륭하다 생각되는 음악가들과 함께 작업을 오래 해오고 있어요. 그들의 장점과 저의 장점이 만나 지금까지 작품을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음악감독이나 음악가가 갖춰야 할 자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요 ▲클래식 ▲상업영화 ▲예술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는 각기 다른 역할이 있습니다. 단순히 음악을 한다고 해서 그 모든 분야를 잘하긴 쉽지 않기에 가장 먼저 매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음악의 쓰임새가 어디인지에 따라 그 음악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어요. 이 음악을 들을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합니다.
Q. 앞으로 목표가 어떻게 되시나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영상음악 안정화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제자, 저와 함께 작업하는 멤버들이 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보수나 저작권 보호 등의 부분에서도 그들보다 10년 이상은 더 활동한 제가 선배로서 길을 잘 닦아놓고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도 함께 행복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올해로 2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처음 시작해서 10년 정도는 버티는 게 버거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힘든 순간도 많이 찾아오겠지만, 쉽게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꾸준하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곽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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