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0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남영동 옛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새로이 문을 열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국가가 자행한 폭력 현장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해 시민에게 공개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곳은 우리나라 근현대사 기록을 통해 역사를 인지하고, 그 공간 자체로 당시 현장을 경험하게 한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직접 그 고통의 기억에 다가갔다.
남영에서 한 걸음, 검은 벽돌을 향해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있는 남영역. 열차에서 내리면 익숙한 천장 구조물과 지하철 스크린도어, 그 사이를 바라보면 검은 벽돌로 지은 7층짜리 옛 건물과 밝은 외벽의 새 건물이 보인다. 바로 간첩을 잡겠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남영동 옛 대공분실’로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이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화요일~일요일에 10시부터 18시까지 운영하며, M1(신관)과 M2(옛 대공분실), E(교육동)로 구성된다. M2는 하루 전까지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후 방문 당일 안내데스크로 방문해야 한다.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M1에 들어서니 길게 늘어진 복도 왼쪽 벽에 이곳에서 고문받았던 피해자들의 친필 편지가 끝없이 전시돼 있다. 어떤 이는 부모님에게, 어떤 이는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아이에게 혹은 친구에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글자에는 당시 괴로웠던 상황과 힘들었던 감정이 빼곡히 담겼다. 기자도 이 시기에 잡혀 들어왔다면 누구에게 편지를 썼을지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어느새 정기 해설 시간이 다가왔다. 정기 해설은 하루에 2번(11시, 14시) 진행하니 시간에 맞춰 방문하길 추천한다.
해설사를 따라 M1에서 나오니, 푸른 잔디밭 위로 악명 높은 치안본부의 대공분실이 검은 위압감을 드러냈다. “연행자 동선에 맞춰 우선 옛 정문으로 가볼까요?”라는 해설사의 말에 따라가니, 검은 철문이 보였다. 아랫부분이 상당히 두께가 있어 대문이 아니라 바리케이드에 가까웠다. ‘이걸 사람의 힘으로 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갑자기 ‘삐’ 소리와 함께 ‘쿵’ 거리는 굉음이 약 2초간 들렸다. 해설을 기다리던 30명 남짓한 관람객들은 화들짝 놀랐고, 어떤 이는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해설사는 “이건 당시 철문이 움직이는 소리를 재현한 겁니다. 피의자의 증언에 따르면,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 같았다고 해요. 군부대에 끌려왔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겠다는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인 채로, 피의자들은 건물의 후문으로 연행됐습니다”라며 M2의 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건을 향한 한 걸음, 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M2의 후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눅눅하고 음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어디선가 불규칙하게 뭔가를 두드리는 듯한 ‘퉁퉁’ 소리가 났고 크게 ‘텅’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눈앞에는 비좁은 엘리베이터와 평상시 보기 어려운 원형 계단이 있다. M2의 경우 음향도 디자인된 전시이기 때문에 전시물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설사는 “이 엘리베이터와 계단은 무조건 1층과 5층만 연결돼 있습니다. 5층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고문이 진행된 조사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의 증언 중에는 지하로 끌려갔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하는 없었다. 일반적인 계단이라면 계단참(평평한 바닥 부분)이 반 층마다 있어서 몇 층을 올라갔는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계단참이 없는 원형 계단을 눈이 가려진 채 끌려가는 피해자는 자신이 몇 층으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퉁퉁’ 소리는 바로 이 원형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였다.
1층을 둘러 보고 있을 때 ‘따르릉’하고 옛날 전화벨이 울린다. 책상 위에 올려진 수화기를 해설사가 들었다 내려놓으니, 영상이 재생된다.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1987년 민주화운동 영상이 자막과 함께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2층에선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1950~89년도까지 현재 재심 중이거나 무죄 판결이 난 사건 목록들이 책장에 빼곡하다. 그중 1980년도로 보이는 파일 하나를 꺼내서 펼치니 ‘본 사건은 진실 규명을 위한 과정이 진행 중입니다’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있다. 다른 파일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가 억울하게 간첩이 된 걸까. 마음이 먹먹해진다.


▲ 특수조사실 내부와 사용한 고문도구.
해설가를 따라 3층 특수조사실에 들어가려 하니, ‘13세 이상 관람’이란 안내가 있다. “초등학생은 보호자 손을 꽉 잡고 들어오세요”라는 해설사의 말에 괜히 주춤거린다. 4개의 모니터가 각기 다른 영상으로 당시 자행된 고문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뚝뚝’ 물 떨어지는 소리, 울컥거리는 소리,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다른 전시실로 들어가니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사용한 최루탄 그래프가 있다. 관람객 이윤자(경북 구미·58) 씨는 “제가 87학번인데, 대학에 입학하니 민주항쟁이 한창이라 거리에서도 최루가스를 많이 마셔서 힘들었어요. 직접 경험한 사람이라 많이 와닿네요”라고 말했다.
4층에 올라가니 뉴스에서 학생운동 소식을 전하는 앵커 목소리,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10민주항쟁의 진행 과정이 전시돼 있다. 큰 천에는 박종철 열사가 1985년에 가족에게 보낸 일상적인 편지 내용이 적혀있다. 전시실 중간에는 임시 벽이 설치돼 있는데, A0~A1 크기 정도로 보이는 박종철의 사망진단서가 클립보드에 꽂혀있다.

▲ 6·10 민주항쟁의 흐름이 담긴 4층 전시실.
고문이 있던 5층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5층 조사실은 모두 문의 색깔과 모양이 같고, 지그재그로 배치해 맞은 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설사는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509호를 먼저 보도록 했다. 방의 오른쪽에는 침대, 왼쪽에는 책상과 의자, 정면에는 가로가 손바닥 정도 되는 좁은 창과 성인 한 명이 발을 뻗기도 힘들어 보이는 욕조가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조사실을 직접 보니 생각보다 더 좁았다. 509호는 당시 상태 그대로 보존했는데, 방 끝에서 키 160대인 기자가 양팔을 벌리고 딱 한 팔을 더 벌리면 다른 끝이 닿을 정도였다.
오른쪽 벽의 침대는 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고문을 위한 것이다. 일단 이곳에 잡혀 온 사람은 잠을 잘 수 없다. 며칠 동안 폭행을 당하고 물고문을 시작한다. 그렇게 나흘쯤 잠도 자지 못하고 고문을 버텼을 때, “빨리 쓰고 자야지, 너도 가족들 보고 싶지 않냐”라는 고문 경찰의 말과 함께 침대가 눈에 들어오면 피해자는 잠의 유혹에 넘어가 거짓 자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는 냉난방기도 있다. 그러나 실질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혹시라도 외부에서 고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 “침대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냉난방기도 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라며 오리발 내밀기 위한 설계일 뿐이다. 이곳 조사실에 놓인 모든 건 고문 도구였다. 이 공간을 설명하는 해설사의 담담함에서 왠지 더 큰 참담함이 느껴졌다.

▲ 박종철 열사 사망이후 보존된 509호.
관람객 정지원(경남 창원시·22) 씨는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김수근으로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에요. 사실 전날에 그의 건축사무소(구 공간 사옥, 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방문했어요. 그때 봤던 김수근이라는 건축의 정수가, 여기에선 사람을 통제하고 학대하기 위해 사용됐죠. ‘공간’이 결국 폭력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현실을 보니, 정말 소름 끼쳐요”라고 말했다.
509호를 제외한 다른 조사실은 구조가 변경돼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비명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한 나무 흡음판이나 CCTV를 위해 설치한 마이크 등 크고 작은 설비가 일부 보존된 상태다. M2 해설이 끝난 뒤, 기자는 조금 더 둘러보기 위해 다시 M1으로 향했다.
기록으로 한 걸음, 넓은 전시장과 비좁았던 시대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문을 열기까지 그동안 주변에는 30~40층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섰다. 하지만 M1은 지하 2층~지상 1층으로 비교적 낮게 지어졌다. 역사를 마주하는 낮은 시선이라는 의미로 담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지하 1층엔 흰 벽에 큰 검은 글씨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적혀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글자가 첫 번째 상설 전시인 <한국민주화운동1>의 도입이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M2의 좁은 공간과는 달리 넓게 트인 공간이 등장한다. 왼쪽의 넓은 벽면 전체가 LED 스크린패널이다. 그곳엔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11개의 민주화운동을 전시하고 있다. 두 번째 상설 전시는 <한국민주화운동2>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반대편 벽으로 가면 볼 수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학생 ▲재야·종교·국제연대 ▲노동 ▲농민·빈민 ▲언론·교육·문화 ▲여성 등 여섯 주체의 민주화운동을 볼 수 있다.
지하 2층으로 내려오니, 상설 전시에서 봤던 패널보다 더 큰 스크린이 있다. “이곳은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담긴 장소, 사물, 노래를 시청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장소를 가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접근으로 진행하는 전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여기 발자국 스티커가 있는 곳에 서서 실제로 체험을 해볼까요?”라는 해설사의 말에 각자 패널 앞에 서서 원하는 콘텐츠를 골랐다. 기자는 노래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선택했다. 그러자 피리 같은 소리와 함께 우리 전통 악기의 선율이 먼저 들렸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들었을 법한 옛 가락과 비슷했다. 몇 소절을 들으니,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처럼 약간은 달랐지만 익숙한 시 구절이 겹쳐 들렸다.
M1을 벗어나면 ‘기억의 통로’라는 조형물을 통해 M2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실태 조사연구>를 통해 확인한 피해자와 아직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를 의미하는 총 400개의 철골 구조물이다. 해설사는 “다 같이 이곳을 지나가 보실까요? 소리가 참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사람이 웅크린 듯한 조형물에 손대며 지나갔다. 뒤를 따라 관람객들이 지나가니, 차르르 소리와 함께 조형물의 진동 소리가 공간을 꽉 채웠다.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웅웅거리는 저음도 같이 들리면서 묘한 화음이 느껴졌다. 이 소리는 이 건물에서만 울릴 소리가 아니라, 앞으로 시민이 내야 할 말소리다. 그 말소리는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김륜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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