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란 행위에는 시간적 혹은 공간적 정의가 존재하는가. 아니다. 잠이란 사실 별거 없다. 잠은 일반적으로 생물이 단순히 신체활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그 의미가 특정 다수에 의해 크게 변질하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들은 현대 특유의 문화로 인한 09:00~18:00 시스템에 동화된 자신들을 ‘사회인’ 혹은 ‘문화인’이라 칭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저녁형 인간’들을 무시하고 비난한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특정하고 복합적인 이미지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저녁형 인간을 두고 아싸, 백수, 싸이버펑크, 히키코모리 등의 도태된 인간을 뜻하는 별명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 모든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만의 ‘행복’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대중적인 콘텐츠를 단순히 이분적으로 구분한다면 ‘자극형’과 ‘비자극형’으로 나눌 수 있다. 최근까지 대다수가 선호했던 자극형에는 주로 선정, 자본, 폭력, 성패, 계급주의 등의 사회적 욕망을 끌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여러 범국가적 경제난과 코로나 19 사태에 맞물려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적 욕망을 이루기 힘든 환경에 처했고, 점점 비자극형에 몰리기 시작했다. 자극이 없는 비자극형에는 요즘 유행하는 여행, 관찰, 연애, 먹방 그리고 국뽕과 같은 힐링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위의 콘텐츠를 대리 만족하거나 그에 빠져 현실을 잠깐 잊는다. 이는 곧 현대 사회에서 무언가에 취해있거나 도피하지 않으면 현대인들이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사회적 명예와 인정욕구, 성취 강박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잠이란 과연 무엇일까. ‘도피처’이다.
저녁형 인간들은 비자극형 힐링 컨텐츠에 중독 혹은 내성이 생겨 더 강한 비자극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수면이란 자기만의 세계에서 무해하고 천진난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극할 수 없는 개인의 공간이다. 잠은 저녁형 인간들에게 곧 ‘행복’이다.
이제 우리는 ‘잠(sleep)’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아침형 인간들이 자아의 질문들을 사회에 던질 때, 저녁형 인간들은 그 답의 책임을 수면에 돌린다. 어쩌면 저녁형 인간들은 현대 사회의 갈등과 경쟁 속에서 벗어나, 본인의 행복을 타인이나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그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나쁜 것일까. 우리는 침대에 눕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그냥 미끄러질 뿐이다. 그 어떠한 사회적 책임과 압박을 느끼지 못했던, 꿈을 갈망하는 것이 아닌 꾸었던 아이의 심정으로 미끄럼틀을 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잠을 ‘sleep’이 아닌 ‘slip’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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