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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승민
<기자 하다> 비상(飛翔)을 위한 비상(非常)
제 991 호    발행일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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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리스트는 이루고 싶은 꿈이나 인생의 큰 목표를 상징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버킷리스트란 언젠가 반드시 ‘성공의 열쇠’로 이어질 특별한 경험이며, 삶의 다음 단계를 열어 줄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그것을 지나치게 거창한 목표로 여겼고, 그래서 더더욱 쉽게 손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 미래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어두기만 한 채 결국 실천하지 못한 항목들도 많았다.
  그런 내가 패러글라이딩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충북대신문>을 장식할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문득 ‘이때를 놓치면 다시 시도하지 못할 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가을이 깊어지며 산자락이 단풍으로 물들던 시기였고,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어떨지 상상만 해왔던 나는 이번만큼은 꼭 직접 보겠다고 다짐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라던 경험들과 지금의 삶이 조금씩 엇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 싫어서 미루는 것도 아닌데, 막상 새로운 일을 향해 한 발 내딛는 데 이상할 만큼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처럼 마음의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충북대신문> 기자로서 마지막 신문을 준비하며 ‘이 굳어진 흐름을 조금은 흔들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걸려 있던 버킷리스트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늘 적어만 두고 쉽게 꺼내지 못했던 그 목록을, 이제는 더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조용한 확신이 찾아왔다.
  출발 지점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TV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가파른 낭떠러지였다. 흐린 날씨 탓에 산 능선은 더 깊게 꺼져 보였고, 다른 체험객들의 짧은 비명은 긴장을 한층 더 짙게 만들었다. “달릴 때 주저앉거나 갑자기 점프하면 위험하니 일정하게 달려 주세요.” 탠덤 조종사의 말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심장은 어느새 쿵쿵거리며 빨라졌다. 평소 같으면 그저 안내 정도로만 들었을 말인데, 낭떠러지를 앞에 두고 들으니 그 말이 몸을 붙잡아 두는 듯했다. 장비는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바람에 흔들리는 천의 장력은 두려움을 더했다. 몇 걸음을 내딛는 동안 발바닥의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고, 마지막 발을 떼는 순간 허공으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가 확 밀려왔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몸이 무게에서 해방되듯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순간, 시원한 공기가 폐 깊숙이 밀려들었고, 공포는 서서히 짜릿함으로 바뀌었다. 산 능선을 따라 번진 가을 단풍은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색의 결이 선명했고, 붉음과 노랑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은 마치 한 장의 풍경화가 천천히 펼쳐지듯 눈앞을 채웠다. 고요한 공중에서 손등을 스치던 바람은 묘하게 따뜻하면서도 차가웠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고민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바람이 약하고 하늘이 흐렸다는 점은 아쉬웠다. 바람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더 높이, 더 오래 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약 10분간의 활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공포가 시원함으로, 시원함이 다시 자유와 해방감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착륙 지점에 섰을 때 다리엔 가벼운 떨림이 남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흔들림이 아니라 ‘드디어 해냈다’라는 성취감에서 오는 울림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로 버킷리스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분명 달라졌다. 그것은 더 이상 ‘성공’을 향한 체크리스트가 아니었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다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특별한 비상(非常)이자, 다시 날아오르게 하는 비상(飛翔)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의 흐름은 종종 멈춰 서기도 하고 이유 없이 가라앉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가 새로운 국면을 열어 주기도 한다. 패러글라이딩은 나에게 그런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버킷리스트는 언젠가를 위한 목표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작은 날개일지 모른다. 두려움이 앞설 때일수록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오히려 가장 가벼운 비상이 된다. 그리고 이번 경험은 ‘날아오르는 비상(飛翔)’과 ‘일상을 벗어나는 비상(非常)’이 겹칠 때 비로소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무엇보다 작은 도전이 예상보다 큰 성취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했다. 앞으로 다시 힘이 필요해지는 순간마다, 그 비상이 조용히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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