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액형 별 성격이 다르다’거나 ‘밤에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때 많은 이가 신봉했지만, 이제는 유사 과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 잡은 것들이다.
그런데 요즘도 유사 과학은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최근 SNS나 유튜브에는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이 오는 주파수’나 ‘공부가 잘되는 주파수’ 같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보고 싶은 정보만 골라 소비하게 만드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이런 주장들은 매우 빠르게 확산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탈과학적 이념이 맹목적 신념과 결합해 추앙된다면 웃음으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허구다’, ‘와이파이로 코로나19가 확산된다’ 같은 주장들은 과학 부정론자들의 음모론이다. 심지어 21세기에도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미디어의 가짜 뉴스와 정치적 왜곡은 진실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현혹하며, 기술 발전과 개인화가 심화될수록 탈과학적 주장은 늘어난다.
이러한 세태 속에 직접 음모론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있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15년간 과학 부정론을 연구하며, 2018년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Flat Earth International Conference)’에 참여해 600명이 넘는 지구평평론자의 주장을 직접 들었다. 이들의 표면적 주장은 ‘이성적 근거 부족’이지만, 그 밑에는 사회적 정체성, 소속감 등 감정적.심리적 요인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매킨타이어는 단순히 비판하거나 배척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미 정치적.이념적 확신이 자리 잡은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으며, 모욕이나 정보 제공만으로는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 매킨타이어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적 관계 구축이 유일한 방법이라 말한다.
2021년에 출간된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 시대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라고 정의한다. 이 책에 따르면 자연은 단순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다. 진화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생존했다. 특히 인간은 가장 협력적이고 다정한 종이다. 타인과 눈을 맞추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유대감과 친밀감을 높인다.
다정(多情)함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다. 프랑스의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 그에게 무한한 책임을 진다고 했다. 얼굴을 바라보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억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세상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살아가는 공간임을 이해한다면 연대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사는 우리와 몰디브에서 기후 위기를 체감하는 누군가는 서로 다르지 않다. 개인화가 고착된 사회에서 연대의 출발선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나 이외의 모든 것을 구분 짓고, 배척하기 시작하면 기후 위기와 난민, 전쟁 등 인류가 당면한 세계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들을 풀지 못하면 결국 재앙은 나에게 다가올 것이고, 나 이외의 모든 것과 자멸할 것이다. 살아가며 만나는 연과 얼굴을 맞추고 다정하게 대화해 보자. 나와 다르더라도 대화를 멈추지 말고, 이어 나가자. 다름을 이해해야 비로소 싹트는 존재의 소중함이 넘쳐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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