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2019년 2학기는 한국 대학의 역사에 특별한 학기로 기록될 것이다. 대학에 새로운 구성원이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강사다. 2019년 2학기부터 시간강사는 완전히 새로운 지위를 갖는다.
“학교에 두는 교원은 총장이나 학장 외에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강사로 구분한다.”
2019년 8월 1일부터 시행된 고등교육법 제14조 2항의 대학교원에 관한 내용이다. 이제 강사는 대학의 교원이 되었으며, 자격과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구성원의 진입과 그에 따른 대학 지형의 개편이다. 지금까지 대학의 구성원은 통상적으로 학생, 교수, 직원이었다. 강사는 대학교육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으나 대학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강사는 우리나라 대학 전체 교원의 약 34%를 차지한다고 한다. 수치로만 보면 강사는 이미 대학교육의 한 축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강사는 학기 단위로 계약을 맺었으므로, 한 학기 단위의(실제로는 4개월) 임시직이었다. 방학에는 강의가 없으니 강사료도 없었다. 수입 없는 방학은 강사시절을 경험한 모두가 갖고 있는 아픈 기억이다. 또 직업으로서 시간강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직종이었다. 한 한기가 끝나면 다음 학기에도 불러 주기를 막연히 기다리며 방학을 보내야 했다. 다시 불러주면 다행이고, 불러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보따리 장사’라는 별명처럼, 보따리를 들고 이 대학 저 대학을 전전하고, 그나마 일거리가 없으면 쉬어야 했다. 시간강사는 학문직종의 최하위 노동자였다.
돌이켜 보면 학생이든 교수든 그리고 직원이든 대학시절에 시간강사의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교수 중에서 강사 시절이 없는 자도 거의 없다. 강사를 거쳐 교수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일반적인 과정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강사의 지위가 불안정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 구성원들이 강사의 처지와 처우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다니,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변화는 시작되었으나, 그 변화를 보는 마음은 편안치 않다. 근본적이고 강력한 상황 변화는 이해 당사자들의 충돌과 갈등을 낳을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법적으로 교원의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은 강사도 새로운 자격에 상응하는 권리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당한 권리의 충족과 실현을 요구하는 권리투쟁도 예측할 수 있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이해당사자들이 각각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돈이 필요한 사안들이 있다. 비정규교수(강사) 노조는 법적으로 부여된 권리를 단시일에 충족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대학은 예산의 출혈을 막기 위해 합법적인 방법은 물론 꼼수와 편법도 마다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돈 줄을 쥔 정부(교육부)는 상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원하는 방식으로 수습하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고 대 혼란의 시작이다. 세 이해 당사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면 대학은 그 자리에 멈춰서고 종국에서 찢어질 것이다.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없는가? 변화된 제도에 따르면, 강사는 채용되면 기본 3년 동안 권리가 보장된다. 즉 대학에 한 번 채용되면, 3년 동안 강의를 하고 교원으로서의 자격을 보장받게 된다. 대체로 강사는 가장 젊고 창조적이며 역동적인 학문세대에 속한다. 이들의 학문적 에너지를 대학발전에 활용할 수는 없는가? 강사는 교원으로서 교육, 연구, 봉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대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대학은 교원인 강사에 대한 지원과 기회를 확대하고, 정부는 새로운 강사제도의 정착을 위한 제도와 예산을 마련할 수는 없는가? 이런 협력과 상생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변화가 정향해야 하는 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강사법 시행 이후 변화는 불가피하다. 물론 이해당사자들 각자가 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성공적 변화와 발전은 외부적인 압력과 충격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변화와 발전 즉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절실한 욕망이 추가되어야 한다. 내부로부터의 동력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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